애기봉, 웃음과 슬픔이 엇갈린 곳에서

by 자그노기

딸이 예약해 둔 김포 애기봉을 다녀왔다. 네 식구가 함께 나선 길. 그저 따라나선 발걸음이었지만,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 속에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유독 눈에 띄었다. 한 어르신은 모바일 접수창구 앞에서 표를 달라며 직원에게 말했다. 아마도 실향민이 아닐까 싶었다. 그분의 표정엔 어딘가 간절한 그리움이 묻어 있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며 우리는 사진을 찍느라 웃음꽃을 피웠다. 높지 않은 산이었지만 구불구불 이어진 길엔 구석구석 장식이 놓여 있었고, 돌 때마다 커다란 별이 반짝였다. 바로 길을 내면 훨씬 수월할 텐데, 일부러 우회로를 만든 듯했다. 올라가는 내내 땀을 훔치며 더위와 싸워야 했지만, 길 자체는 묘하게 의미심장했다. 곧바르게 나아가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처럼 말이다.


도착하자 사람들은 하나둘 실내로 들어가 피서를 했다. 그곳에서 해설사 한 분이 마이크를 들고 북한 쪽을 바라보며 열정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우리는 맨 앞자리에 조용히 앉아 귀를 기울였다. 설명은 맛깔났고, 곧 마음이 집중되었다. 그저 듣는 것만으로도 한 편의 역사 다큐멘터리를 눈앞에서 보는 듯했다. 바다 건너로 보이는 북녘의 집들과 풍경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나도 내년이면 예순이다. 내 유년 시절의 풍경과 지금의 북한 모습을 겹쳐보니, 마음속 어딘가에서 짠한 감정이 차올랐다. 어린 시절의 동심이 뭉클하게 되살아났다. 밖으로 나가 망원경을 보려 했지만, 키가 작아 하늘만 보였다. 아들과 딸은 내 다리를 붙잡고 번쩍 들어 올리려 했지만, 그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 어쩐지 부끄러워 얼른 고개를 돌렸다. 내 키가 새삼 어이없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애기봉 스타벅스에 앉아 차를 마셨다. 참전 용사들의 유품을 녹여 종을 만들었다는 전시물 앞에서 사진도 찍고, 실향민들의 애환이 담긴 글도 찬찬히 읽었다. 그들의 절절한 사연 하나하나가 마음을 울렸다.


초소를 지나 애기봉 전망대로 들어설 때,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느껴졌다. 이 땅에서 차를 타고 갈 수 있는 북쪽 방향의 끝. 현실은 갈 수 없음을 알고 있지만, 고작 몇 킬로미터 앞에 있는 땅을 보며 왜 이토록 가슴이 먹먹해지는 걸까. 우리는 그저 구경꾼일 뿐이었다. 하지만 실향민들은 고향을 눈앞에 두고도 돌아갈 수 없으니, 그 마음이 얼마나 사무칠까.


애기봉을 뒤로하고 돌아서는데, 마음이 이상하게 무거웠다. 올 때보다 몇 배나 더 깊고 복잡한 감정이 나를 짓눌렀다. 이것은 단순한 여행의 여운이 아니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고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울림. 나는 오늘, 비로소 그 마음에 조금 닿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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