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를 보다 보면 애완동물 영상이 자주 뜬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순간도 많지만,
어느 순간 이별하는 장면이 나오면
내 안에서 깊이 묵혀두었던 상처가 조용히 올라온다.
나도 모르게 “안 돼…” 하고 중얼거리며 화면을 닫곤 한다.
어릴 적 시골에서 고양이를 키웠다.
그때는 고양이를 집에서 기르려면 꼬리를 조금 잘라야 한다고 믿었다.
멀리 나가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했다.
쥐를 잡기 위해 기른 고양이,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없는 미신이었고
생명에게 가해진, 잊을 수 없는 잘못이었다.
고양이를 좋아해서 키우기보다는
필요해서 곁에 둔 존재였기에
정도 깊게 나누지 못했다.
시골의 일상은 늘 바빴고, 부모님은 들판에 나가셨고,
나는 혼자였다.
그런 나에게 고양이는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었다.
구슬을 굴리면 따라다니며 놀아주고,
밥상 밑에서 생선을 슬쩍 받아먹고,
새벽이면 내 이불 속에 파고들어
골골거리며 잠들었다.
거칠고 따뜻한 혀, 작은 몸의 체온,
그 모든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영원할 줄 알았던 동거는
어느 날 갑작스러운 이별로 끝났다.
처음 겪는 상실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고,
감정을 모르니 표현도 할 수 없었다.
그저 가슴속 깊이 삼켜 넣었을 뿐이다.
그 후로 한동안,
애완동물을 애지중지 키우는 사람들을 보아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았다.
어른이 되고, 부모님이 떠나고 마음이 허전할 무렵
지인이 다시 고양이를 권했다.
이번엔 마음을 열어보기로 했다.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가족의 동의 아래
새 생명을 들였다.
지금 나는 누구보다 이 아이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유튜브 속 이별 장면을 보며
가슴 한쪽이 자꾸 울렁거린다.
언젠가는 또 이별을 겪게 되겠지.
생각이 거기까지 닿으면
저절로 평균 수명을 헤아려보고
함께할 시간을 계산하는 나를 발견한다.
정을 주고, 다시 떠나보낸다는 것.
너무 당연하면서도 너무 아픈 일이다.
과연 나는 그 순간을 잘 견딜 수 있을까.
그 두려움을 품은 채,
오늘도 나는 이 아이들을 품에 안고
조용히 골골 소리를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