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기가 숨어 있는 곳
전통시장에서 가래떡과 찰시루떡을 샀다. 그런데 이것만으로는 아쉬웠는지, 건너편의 옛날 찐빵과 만두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하얗게 부풀어 오른 찐빵 속 팥이 나를 부르는 듯했다. 잠시 망설였지만 결국 “옛날 찐빵 주세요.” 말하는 순간 마음속 흔들림이 사라졌다.
전통시장에 오면 시골 장터에 온 듯, 고향 사람을 만난 듯한 설렘이 있다. 오가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가게마다 지나칠 수 없어 천천히 발걸음을 멈춘다. 소박하고 편안하다. 이곳에서는 시계가 느리게 흐른다.
총각들의 힘찬 외침, 떡볶이집 아주머니의 호객 소리, 호떡 굽는 손놀림. 누구는 활기차고 누구는 투덜거리지만, 그 속엔 사람 냄새가 있다. 불 앞에서 눈을 살짝 찡그리며 호떡을 굽는 아주머니의 손길에 오랜 시간 쌓인 삶의 단단함이 보인다.
물건을 사러 다니다가 계산하려는데, 카드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지하도를 건너 20분 가까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가며 한숨이 몇 번이나 나왔는지. 다행히 카드가 그대로 있었다. 돌아서는 순간 등줄기로 흘러내리는 땀에 마음도 후두둑 풀렸다. 다시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약국 앞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이유도 모르고 덩달아 줄에 선 사람들. 표정 없는 얼굴, 무덤덤한 분위기 속에서 ‘사고 싶으면 사세요’ 하는 묘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전통시장을 찾는 사람들은 충분히 생각하고, 천천히 고르고, 그래서 후회하지 않는다.
대형마트는 다르다. 한눈에 들어오는 물건들, 주섬주섬 카트에 담다 보면 어느새 금액이 훌쩍 올라 있다. 계획에 없던 물건들이 가득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엔 “또 샀네” 하는 후회가 남는다. 정신을 놓는 순간 전략에 휘말려버린다.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서로 다른 얼굴을 한 두 공간은 도시와 시골처럼 대비된다. 차가운 세련미와 따뜻한 촌스러움. 편리함과 정겨움. 둘 다 필요한 곳이지만 마음이 쉬는 곳은 따로 있다.
시장 바구니가 묵직해 어깨가 아플 즈음, 마지막으로 들른 야채 가게에서 오이고추와 속배추를 샀다. 집에 돌아와 갓 무친 겉절이를 따끈한 밥 위에 올려 한입 베어 먹자, 피곤이 스르르 녹아내렸다. 마치 고향에 다녀온 듯한 기분.
세련된 장소는 많아도, 마음이 쉬는 곳은 흔치 않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시장길에서 오래된 따뜻함을 사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