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톡에 남은 이름 석자

by 자그노기

인생의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다만 주어진 삶 앞에 순순히 승복하며 하루하루를 걸어갈 뿐이다. 하루가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시간임을 알고 살아간다면, 아마 후회는 조금 덜하지 않을까.


카톡 친구 목록에 오래된 이름 석 자가 있다. 가끔 프로필 사진을 들여다보며 새로운 소식이 없나 살피곤 하던 지인이었다. 새댁 시절부터 함께했던 사람, 두 가정의 인연은 신혼 때부터였다. 비슷한 나이에 결혼했고 아이들 나이까지 비슷해 자연스레 왕래가 잦았다.


한 시간 남짓한 거리였지만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밥을 함께 해먹고, 서로의 집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부업이 있을 땐 기꺼이 도와주며, 아이들이 자라는 순간들을 함께 겪었다. 남들이 보면 절친이라 불러도 어색하지 않을 모습이었지만, 묘하게 지켜지는 거리감이 있었다. 아이들 이야기, 생활 이야기 정도는 나눴지만 마음 깊은 얘기는 꺼내놓지 않았다. 서로의 선을 넘어가지 않고, 그러나 정은 오래 남는 그런 사이였다.


세월이 흐르며 아이들은 성인이 되었다. 25년 전 함께 뛰놀던 그 아이들의 안부를 우리 아이들이 먼저 궁금해할 만큼, 그 시절은 각자의 기억 속에 단단히 자리 잡고 있었다.


딸아이 결혼을 앞두고 망설이다 청첩장을 카톡으로 보냈다. 누구보다 기뻐해줄 줄 알았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답이 없었다. 몇 번이나 카톡을 열어 확인해봐도 그대로였다. 그 침묵 앞에서 설명할 수 없는 잔잔한 안개가 마음속에 퍼지기 시작했다. 불안인지 서운함인지 모를 감정이 조각조각 번졌다.


결국 지인은 식장에 오지 않았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나서야 통장 맨 뒷장에 조용히 찍힌 이름 석 자와 축의금이 남아 있었다. 감사의 마음으로 아메리카노를 보내자 그제야 답장이 도착했다.


“축하해요. 참석 못 해서 미안해요. 선물까지 보내주셔서 연락드려요. 전화했는데 다른 분이 받아서요. 번호 좀 알려주세요.”


카톡으로는 말할 수 없는 사연이 있다는 뜻 같았다. 번호를 보내자 곧 전화벨이 울렸다.


지인은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었지만 운전할 사람이 없어 오지 못했다고 했다. 충분히 올 수 있는 거리인지라 변명처럼 들렸지만, 그의 목소리는 반가움보다 낯선 기운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조용히 말문을 열었다.


“얘들 아빠가… 없어요. 안 그랬으면 몇 번이고 갔을 텐데…. 그래서 못 갔어요.”


순간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해 “네?”라고 되물었다. 그러나 이미 마음은 어딘가 뚝 떨어져 내렸다.


1년 전 남편이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말이었다. 너무 갑작스러웠다. 건강한 분이라고 생각했기에 더욱 믿기지 않았다. 찾아온 통증이 금세 병으로 깊어졌고, 1년을 넘기지 못하고 떠나셨다는 이야기였다. 낯선 충격에 눈물이 핑 돌았다.


그동안 멀리 이사를 갔으니 잘 살고 있으리라 짐작하며 연락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혹시 지나친 관심이 실례가 될까 조심스럽기만 했는데, 돌아보면 그 조심이 외면이 되어버린 건 아닌지 마음이 저렸다.


전화를 끊고 다시 카톡으로 글을 보냈다.


“너무 무심했어요. 정말 죄송해요.”


여리고 여린 사람이었던 지인. 이제 세 식구만 덩그러니 남겨둔 채 버티고 있는 그를 떠올리니 가슴이 아려왔다.


카톡에서 오래 지워지지 않는 이름 석 자가 있다면, 그 이름을 한 번쯤 눌러보면 어떨까.

하루라는 선물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동안, 자신은 물론 타인에게도 그 하루의 의미를 다시 떠올려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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