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을 선물 받았다.
겉표지만 보아도 노숙인들의 삶을 담은 이야기라는 것이 느껴졌다. 코로나 이전, 거리 한편에서 쉽게 볼 수 있던 사람들. 찌든 담배 냄새와 구겨진 옷자락에 고단한 세월이 스며 있었다. 교회에 들러 봉지커피나 몇 푼을 얻고, 일이 생기면 하겠다며 어설픈 웃음을 지어 보이던 얼굴들. 누군가는 그들을 불편해했고, 누군가는 젊은 나이에 저렇게 산다며 한심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지인의 옆집에 살던 사람도 집을 나와 노숙 중이라며 찾아온 적이 있다.
다시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던 그 눈빛 속에는 이미 거리의 공기가 깊게 스며 있었다. 이해하기 어려웠던 그 마음을, 나는 이 책에서 조금씩 읽어내기 시작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나는 그들의 자리로 한 걸음씩 내려가고 있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삶의 근력이 빠진 사람들.”
이 표현이 유난히 마음을 울렸다. 깨져버린 가정의 십자인대, 어린 시절에 채워지지 못한 그리움과 위로, 인정받지 못하고 버려진 기억들이 깊은 주름처럼 남아 있었다. 아버지의 차가운 눈빛을 ‘지옥’이라 표현한 문장을 읽는 순간, 마음이 먹먹해졌다.
부모로서의 그들을 용서할 수는 없지만, 그도 결국 상처받은 한 인간이라는 고백이 조용히 가슴을 흔들었다.
그들에게 남은 희망은 ‘글’이었다.
누구를 붙잡고 이야기하지 않아도, 글은 삶을 돌아보게 하고 마음을 치유하는 약이 되었다. 외눈박이처럼 세상을 보며 낙심했던 지난날들이 글을 통해 다시 제대로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눈사람, 금새 녹아 사라지는 연약한 존재지만, 존엄한 인간이자 외로움이 만든 사람이다.”
이 문장이 오래 남았다.
춘자라는 인물의 안타까운 생은 특히 마음을 쿡 찔렀다. 책 속의 인물들과 어느새 친구가 되어 있는 나를 발견했다. 자존감은 바닥에 닿아 사람을 만나는 일조차 두려운 그들. 무기력은 담배꽁초 하나도 무거울 정도라고 했다.
요양원의 치매 노인이 여기는 좁다며 더 넓은 곳으로 가셨다. 말하던 장면에서는 이상하게 마음이 울렸다.
소주를 ‘쓰디쓴 맑은 물’이라 하고, 공황장애를 ‘바늘구멍으로 숨 쉬는 것 같다’고 표현한 문장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었다.
센터에서 재활하며 다시 사회로 나아가는 이들을 돕는 사람들에게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그들의 하루에 작은 희망이 심어지는 건 결국 누군가의 손길 덕분이니까.
생각해 보면, 우리와 그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삶을 뒤집어 놓으면 비슷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을 향한 시선이 곱지 않을 때도 있지만, 그들 역시 소중한 하나의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정이 아니라 기다림.
비판이 아니라 지켜봄.
그들의 끊어진 십자인대가 다시 이어지고, 정신적‧육체적 근육이 단단해질 때까지.
우리는 그저 곁에서 묵묵히 기다려주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이 책은 조용히 말하고 있는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