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의 아바타 (3)

by 빈집

내가 초등학생일 때 우리 집은 형편이 어려웠다. 돈이 없었다. 남들 다 다니는 피아노 학원도 다녀본 적이 없다. 그 흔한 학교 방과 후 활동도 해본 적 없다. 한 달에 돈 10만 원 조차 낼 수 없는 사정이었다.


"엄마 나도 방과 후 컴퓨터 다니고 싶어."

"그런 거 다 소용없어. 그리고 한 달에 15만 원? 너무 비싸."

"엄마 나도 피아노 배우고 싶어."

"집에 피아노 있잖아. 너 악보 볼 줄 아니까 집에서 해."


나는 할 줄 몰라서 다니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친구도 사귀고 싶고... 재밌어 보여서... 궁금해서 그랬던 거였다.


안 보내준다고 하면 울면서 떼쓸 법도 한데 나는 단 한 번도 떼를 쓴 적이 없다. 갖고 싶은 장난감, 인형. 사주지 않는다고 울거나 짜증 낸 적이 없다. 우리 엄만 어디 가서 내가 어렸을 때 순했다, 다른 애들보다 키우기 쉬웠다, 얌전했다고 얘기하고 다니겠지.


나는 어른스럽다는 말이 가장 슬프다. 아이가 아이다워야지. 어른스럽다는 건 일찍 뭔가를 알아버렸기에 어른인천 연기하고 있는 거다. 아이들은 그저 아무것도 모르고 그저 해맑고 걱정 없이 밥 먹고 뛰어다니고 잠만 잘 자면 된다. 그게 그 나이 때 아이들의 할 일이다.


나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우리 집이 어렵다는 걸 알았기에, 엄마 아빠가 나 때문에 지금보다 더 힘들어지는 게 싫어서 어른스럽게 행동했던 거뿐이다. 때로는 나도 다른 보통의 아이들처럼 굴고 싶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가끔씩 피아노 학원에 다니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온다. 어릴 때 해소되지 못한 것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나타나는 듯했다. 아직까지 등록은 못 했지만 머지않아 꼭 정식적으로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


번 돈으로 피아노 학원에 등록할 수 있는 만큼 어른이 된 나. 저때의 엄마 아빠가 참 미웠지만 이제는 이해한다. 하고 싶다는 거, 갖고 싶다는 거 마음대로 해줄 수 없는 부모의 마음은 더 난장판이었겠지. 눈에 넣어도 안 아플 토끼 같은 자식인데. 그런 내 자식한테 해줄 수 없어서 얼마나 가슴이 아팠을까.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샀던 브랜드 가방이 오랫동안 메서 찢어지고 많이 낡았다. 새로운 가방을 사야 할 때가 돼서 어떤 가방이 좋을지 매일 고민했다. 옆반에 어떤 친구가 메고 다니는 가방이 예쁘고 좋아 보였다. 하지만 나는 엄마한테 저 가방으로 사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나도 친구들처럼 예쁜 가방이 메고 싶었는데 나는 입학할 때 산 그 가방을 마지막으로 졸업할 때까지 예쁜 가방을 멘 적이 없다. 지하상가에서 만 원 주고 산 가방을 메고 다녔다.


"너 가방 어디꺼야?"

"나도 몰라. 엄마가 사다준거라."

"얼마줬어?"

"나도 몰라. 엄마가 사가지고 온거야."


친구들이 이 가방은 어디 브랜드냐며 물어도 나는 그저 엄마가 사 온 거라 나는 잘 모른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어린 나는 싫다는 말 한마디 한 적 없었다. 엄마 아빠가 속상할까 봐...


나는 지금도 가방에 큰 관심이 없다. 안 좋은 기억까지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좋은 기억도 아니니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밖에서 외식을 하고, 새로 나온 옷을 사고, 갖고 싶었던 운동화를 사고. 돈이 남아 돌 정도로 부유한 건 아니지만 그냥저냥 남들처럼 먹고살 만큼이 되니까 그제야 예전의 내가 보여서 마음이 아프다.


평범한 게 가장 어렵네. 남들만큼... 보통... 평균... 그게 가장 어렵다. 그냥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중간.


가장 행복한 삶이 어쩌면 평범한 삶일 수도 있겠다. 평균의 삶. 높은 자리에 있어도 괴롭고, 낮은 자리에 있어도 괴롭고, 중간도 괴롭다면 나는... 중간보다 살짝 위?

야망이 없어 보일 순 있겠지만 어쩔 땐 야망 없는 삶이 현실적으로 더 나은 삶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현재도 내가 추구하는 삶의 이미지는 너무 넘치게도, 너무 부족하게도 아닌 적당히. 괜찮을 정도. 그 정도로 잔잔하게 호들갑스럽지 않은 그런 삶을 추구한다.


이럴 때 내 모습이 가장 '나' 다울 것 같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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