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로 하루가 끝날 때

by 하솜

해야 할 일은 분명히 있다.

머릿속에서도 몇 번이나 정리했다.

그런데 막상 시작하려고 하면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의지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모르는 상태에 가깝다.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한 것 같지 않고,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아도 되고, 스스로에게 실망할 이유도 생기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마음은 시작을 미루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그 사이 시간은 흐른다.

무언가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이 쌓인다.


준비만 하다 하루가 끝난다.

그러고 나면 “오늘도 아무것도 못 했다.”는 말만 남는다.

이 말은 생각보다 무겁다.


아무것도 안 했다는 표현 안에는 게으름, 무능함, 포기 같은 단어들이 한꺼번에 섞여 있다.

그래서 하루를 돌아볼수록 마음은 더 움츠러든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시작하지 못한 이유를 하루 종일 안고 있었고, 그 불안을 견디느라 이미 많은 에너지를 써버렸다.


지금의 멈춤은 의지가 없어서라기보다 실패할 여유조차 없는

상태에 가까웠다.


한 번 더 무너질 힘이 없어서 아예 출발선 앞에 서지 못하는 것.

그래서 오늘도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한 채 하루가 끝난다.

이 사실이 여전히 괴롭지만, 적어도 이 멈춤에 이유가 없지는 않다는 것만은 조용히 인정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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