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가를 시작하려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과정이 아니라 끝이다.
잘 안되면 어떻게 하지, 망치면 어떻게 하지, 괜히 시작해서 싫어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래서 시작은 늘 두려움부터 데려온다.
이왕 하는 거면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붙는다.
그 조건이 붙는 순간 몸은 다시 굳어버린다.
완벽하지 않으면 차라리 하지 않는 게 낫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운다.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실패하지 않았다는 증거가 되니까.
그렇게 하루를 넘긴다.
하지 않은 선택을 하면서 스스로를 지킨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 선택 뒤에는 조금씩 쌓이는 자책이 남는다.
사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의욕에서 나온 게 아니다.
이미 여러 번 무너져 본 사람의 방어에 가깝다.
다시는 그 감정을 겪고 싶지 않아서 아예 시작을 막아버리는 것.
그래서 나는 오늘도 출발선 앞에 서 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붙잡고 있으면서, 동시에 그 사실 때문에 조금씩 지쳐간다.
이 상태가 게으름이라 불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건 시작을 못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많은 실패를 이미 겪어버린 사람의 망설임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