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자리에 머무는 용기

by 하솜

불안이 커질수록 나는 자꾸 어디론가 가야 할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힌다.

지금 이 자리에 계속 머물러 있으면 모든 게 잘못된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서두르고, 조급해지고, 아직 준비되지 않은 선택을 앞당기려 한다.


지금의 자리는 자주 잘못된 자리처럼 보인다.

이 정도의 마음 상태, 이 정도의 속도, 이 정도의 삶.

어딘가로 이동하지 않으면 뒤처질 것 같고, 계속 여기 있으면 영영 벗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머무르는 일은 쉽게 비겁함으로 오해된다.

움직이는 건 포기한 것처럼 보이고, 잠시 멈춘 건 나태함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그렇게 단순한 상태가 아니다.


나는 도망치지 않고 여기에 있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확신 없는 상태로, 그래도 이 자리를 버리지 않고 있다.

그건 생각보다 큰 용기가 필요한 선택이다.

머무른다고 해서 내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움직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가 멈추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도 나는 여전히 생각하고, 느끼고, 살아있다.


언젠가는 이 자리에서도 다음으로 나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는 도망치듯 떠나는 게 아니라 준비된 상태로 옮겨가고 싶다.

그래서 오늘은 여기에 머문다.


지금의 이 자리는 목적지가 아니다.

하지만 분명 과정의 한가운데다.

그 사실을 믿고 오늘도 이 자리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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