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은 정말 아무 일도 없다.
기분이 특별히 좋지도 않고, 크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기억에 남길 만한 장면도, 굳이 설명할 사건도 없는 하루.
예전의 나는 이런 나를 의미 없는 날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조금 다르게 느낀다.
아무 일도 없다는 사실이 오히려 숨을 쉬게 해주는 날이 있다.
불안이 크게 치고 올라오지도 않고, 마음을 끌어당기는 일도 없다.
그저 조용히 흘러간다.
이 조용함은 지루함과는 다르다.
지루함이 무언가 부족하다는 감각이라면, 이 조용함은 지금 이 정도면 괜찮다는 상태에 가깝다.
아무것도 더하지 않아도 버텨야 할 것도 없는 시간.
감정의 파도는 늘 높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런 날에 배운다.
늘 힘들지 않아도 되고, 늘 애쓰지 않아도 된다.
잠시 아무 감정도 나를 흔들지 않는 상태.
그게 이렇게 편안할 줄은 몰랐다.
오늘의 나는 무언가를 해내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살아 있었다.
그 하루를 통과했고,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는 날은 눈에 띄는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쌓여 마음을 회복시키는 공간을 만든다.
항상 무언가가 일어나야만 삶이 굴러가는 건 아니다.
오늘은 조용히 지나간 하루였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도 위로가 된다.
이런 하루도 나를 살아가게 한다는 걸 이제는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