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잠잠한 날이 오면 이상하게도 먼저 긴장하게 된다.
이 상태가 오래가지 않을 것 같아서, 곧 무너질 것 같아서.
괜찮다는 감각이 반가움보다는 의심으로 다가온다.
예전의 나는 괜찮지 않은 상태에 훨씬 익숙했다.
불안하고, 가라앉고,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감정들.
그 감정들은 힘들었지만 적어도 낯설지는 않았다.
그래서 평온은 어딘가 어색했다.
괜찮은 날에도 마음을 점검한다.
혹시 도망치고 있는 건 아닐까,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건 아닐까.
아무 일도 없는 이 상태가 오히려 잘못된 건 아닐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괜찮을 자격을 묻는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늘 불안해야만 진짜인 건 아니다.
늘 아파야만 성실한 것도 아니다.
아무 이유 없는 날이 거짓일 이유는 없다.
그저 잠시 숨을 고르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이 평온을 밀어내지 않기로 한다.
의심하지 않고, 앞날을 걱정하지 않고, 지금의 상태를 그대로 두어본다.
괜찮다면 그냥 괜찮은 채로.
괜찮은 순간에 머무는 일도 연습이 필요하다.
불안을 대비하지 않고, 다음 파도를 미리 상상하지 않는 연습.
지금 이 감각이 나에게도 허락될 수 있다는 연습.
이 평온이 얼마나 갈지는 모른다.
하지만 오늘은 그 끝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괜찮은 상태를 의심하지 않는 하루.
그 자체로 충분한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