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간부터 나는 조금 괜찮아진 나를 낯설어하기 시작했다.
예전처럼 가슴이 조이지 않고, 생각이 한 방향으로만 쏠리지 않는 날들.
그 상태가 반가우면서도 어딘가 불편했다.
괜찮은 상태가 오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확인하려 든다.
이게 진짜인지, 잠깐 속은 건 아닌지.
마치 다시 불안해질 순간을 미리 찾아내야 안심할 수 있는 것처럼.
오래 불안했던 사람에게 불안은 고통이면서도 정체성이었다.
힘들었던 시간들이 나를 설명해 주는 말이 되었고, 그 상태로 버텨온 내가 진짜 나라고 믿어왔다.
그래서 괜찮아진 나는 어딘가 가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상태가 바뀌었다고 해서 내가 달라진 건 아니다.
불안했던 나도 나였고, 지금의 나도 나다.
다만 지금은 덜 흔들리고 있을 뿐이다.
괜찮아진 나에게도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
새로운 환경에 몸이 적응하듯, 새로운 마음 상태에도 시간이 필요하다.
바로 편해지지 않는다고 해서 이 상태가 잘못된 건 아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상태를 유지하려 애쓰지 않으려 한다.
좋은 기분을 붙잡으려 하지 않고, 다시 흔들릴까 봐 미리 긴장하지 않는다.
그냥 지금의 나를 그대로 둔다.
괜찮은 나를 완전히 받아들이는 데에는 아마 시간이 더 걸릴 것이다.
그래도 오늘은 이 상태를 부정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조금 더 나에게 가까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