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도의 나라, 가나(1999)
도심의 야경은 다른 도시들에 비해 약하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공항 로비는 비슷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크지 않은 공항 건물을 빠져나와 무더운 느낌의 공기가 훅하고 호흡기를 짓누르는 이곳은 적도의 나라, 아프리카 가나공화국이다.공항 주위에는 흔히 느끼는 환한 불빛들이 거의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갑자기 나타난 하얀색 물체들이 다시 한번 나를 놀라게 한다. 탑승객들을 마중 나온 현지인들의 새하얀 이빨들이 주변의 색깔에 대비되어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1999년 봄, 중고 자동차를 수입하고 판매하는 해외지사의 책임자로 이곳 에 왔다. 국내에서는 자동차 회사 근무경험이 있었지만 해외 근무는 처음이었으며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이었다. 영화로 치자면 장르는 그대로지만 해외 촬영으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회사의 이름은 '카프로'(KAPRO, Korea Automobile Professional)라고 짓고 명함에 로고도 만들었다. 회사의 오너는 국내에서 폐차장을 운영하시는 사장님이셨다. 당시 아프리카로 중고 차량 및 중고 부품 수출이 많아지면서 이곳에 지사를 만들고 책임자로 나를 고용한 것이었다.
도시를 운행하는 택시는 주로 대우자동차의 중고 티코였고 소형버스는 현대자동차의 중고 그레이스가 주종을 이루었다. 당시 가나 대통령은 공군 출신으로 쿠데타를 성공시켜 정권을 잡은 '롤링스'라는 사람이었다. 나중에 교민들로부터 들은 얘기에 의하면 현지 정규군에는 이미 태권도를 정식으로 배우고 있었고 일부 쿠데타 군인들은 태권도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들었다. 그만큼 현지인들 사이에서는 대한민국의 위상이 높았고 국내 가전제품, 중고차들이 날개 돛 치듯 팔리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인가 운전 중에 교통위반으로 딱지를 발급받게 되었는데 현지 경찰은 내게 권총을 보여주며 겁을 주었다. 내가 느끼기에는 돈을 뜯어내려는 수작 같았다. 바로 교민 회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요청했고 그분이 운영하시는 호텔로 이동했다. 교민 회장님은 오래전에 대한민국 태권도 사범으로 파견되어 군인들에게 태권도를 전파하셨고 그 후에 현지에서 호텔 사업을 하셨던 것이다. 마침 호텔에 들른 체육부 장관에게 교민 회장님은 나를 소개 시켰주었다. 그 광경을 보고 날 협박하던 경찰들은 식겁하고 다시는 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가나의 수도는 아크라(Acra)이고 내가 거 주해던 곳은 그곳으로부터 1시간 거리인 테마(Tema)라고 하는 항구도시였다. 아크라에는 다른 곳에는 없는 유일한 명소가 한 군데 있었다. 바로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였다. 주말이면 혀에 닿으면 사르르 녹는 아이스크림의 부드러운 촉감을 느끼기 위해 푹푹 찌는 적도의 날씨를 뚫고 그 먼 거리를 달려가곤 했다. 물론 간식이라고 할 수 있는 코코넛이나 사탕수수는 동네 어디서나 있었지만 소프트아이스크림은 차원이 달랐다. 가격도 무척 비쌌지만 항상 가게 앞에는 줄 서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