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비싼 랍스터, 아프리카(2)

적도의 나라, 가나(1999)

by 소채

서아프리카 '가나공화국'의 원래 국명은 '골드코스트'였다. 1957년에 국명을 ‘가나공화국’으로 바꾸었다. 세계적인 ‘금’ 산지이며 인근 바다에서의 어획량도 많아서 전 세계의 어선들이 몰려오는 곳이어서 아직도 그 지역을 ‘골드코스트’라고 부른다. 그곳은 오래전부터 한국 원양어선들의 전초기지로서 대한민국 교민들이 자리를 잡고 살았다. 그중에 1976년 아프고(AFKO, Africa Korea) 수산을 창립한 고 김복남 회장은 ‘가나’에서 봉사와 나눔의 정신으로 한국인의 위상을 높여주었다. 아프코에는 약 200여 명 한국인 직원과 1,000여 명의 현지 직원이 근무하는 큰 회사였다.


자동차 비즈니스를 하다 보니 업무적으로는 교민들의 차량에 대한 기술적인 자문과 차량 수리도 해 주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여러 교민 모임도 참석하게 되었다. 주말이면 한국인 교회에 참석해서 예배 와 점심 식사도 같이하고 골프 대회를 통해서 개인적인 친분도 쌓았다. 주로 어울리던 분들은 선박회사 임원, 아파트 건설을 위해 파견 나온 대륭건설 지사장, 자동차 오일 필터를 만드는 회사의 지사장, 한국대사관 직원 등이었다. 머나먼 적도의 나라에서 서로 의지하고 함께하는 동네 한국 교민이 바로 이웃사촌이었던 것이다.


잘 알고 지내던 필터 회사의 지사장은 나보다 몇 년 전에 총각으로 이곳에 왔다가 유부남이 되고 현지에 정착했다. 현지 교민이었던 아프코 임원의 딸과 결혼해서 자녀까지 둔 아빠가 된 것이다. 해외 근무이다 보니 한국 음식이 늘 그리워했던 걸 알았는지 그는 자기 집에 나와 몇 명의 지인을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오랜만에 맛보는 김치와 된장찌개를 비롯한 한국의 음식에 정신을 놓고 '소주'와 함께 뜨거운 적도의 밤을 고국을 그리워하며 불태웠다. 맛나게 먹었던 여러 음식 중에서도 나는 '게장'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평소 '양념게장'을 좋아했던 나는 다 먹고 나서 그것이 '게(Crab)'가 아니라 '랍스터(Labster)' 인 것을 알았다. 세상에나!


해안이 인접한 나라여서 해산물이 풍성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랍스터 장'까지 만들어 먹을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진짜 '랍스터'를 먹기 위해 회사 직원들과 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한적한 바닷가로 놀러 갔다. 나름 바닷가에 빽빽이 들어선 국내의 수산횟집을 기대했었지만 그 어떤 횟집도 찾아볼 수 없었다. 대신 따가운 햇살을 피할 수 있는 움막 몇 차뿐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이건 또 뭔 일 이란 말인가! 동행한 현지인 직원은 해안가에 있던 동네 청년들에게 랍스터를 주문(?) 했다. 그들은 곧바로 조그마한 나무배를 타고 랍스터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는 것이었다.


한참이 지나자 랍스터를 잡으러 갔던 동네 청년들은 두 포대자루에 가득히 랍스터를 잡아왔다. 사이즈는 생각보다는 크지 않았다. 대략 50마리 정도는 되었고 일부는 바로 해체해서 회로 먹고 대부분은 큰 솥에 넣고 끓였다. 솥단지 채로 바닷물을 퍼서 잡아온 랍스터를 풍덩 넣고 불을 지폈다. 그게 다였다. 희한하게도 간이 딱 맞고 탱탱하게 익은 잘 익은 속살의 식감과 노을 지는 아프리카 바닷가의 환상적인 풍경은 20여 년이 지난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싱싱한 랍스터 회를 먹는 우리를 보고 아프리카 현지 직원들이 남긴 말도 함께 기억된다. "You look barbarian! 야만인 같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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