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십대 초반에 명예퇴직

삼성자동차(1997)

by 소채

미국 어학연수를 마무리할 즈음 대학 선배의 도움으로 새로 론칭하는 삼성 자동차에 지원을 할 수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현대자동차를 3년간 다닌 경력은 삼성 자동차를 재취업하는데 발판이 되었다. 젊은 혈기에 대기업을 그만두고 자비로 미국 연수 길에 나섰던 나는 다시 대기업 자동차 회사에 근무를 하게 됨에 따라 새로운 곳에서의 사회생활이 시작되었다. 그것도 삼성이라는 국내 굴지의 회사가 아니었던가, 아내에게도 약간의 위안을 갖게 해주었다. 하지만 현대와 삼성은 이미지만큼이나 회사 문화에 차이가 있음을 쉽게 느낄 수 있었다.


회사 내부에는 출신 간의 차별이 있었다. 현대자동차 공채 사원이었던 시절과는 달리 타 브랜드 경력사원으로서 기존 삼성그룹의 공채들과의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조직에 적응하기 위해 그 정도쯤이야 감수해야 했다. 초창기 근무는 서울 보라매 빌딩, 본사 서비스 기획팀에서 고속도로 휴게소 서비스코너 오픈과 긴급출동을 담당했고 나름 삼성자동차 론칭에 조금이나마 기여했다. 그곳에서 만나서 친하게 지냈던 팀 동료였던, 현재 삼성화재 남수석과 도요타 자동차의 강상무와는 아직도 자동차 업계에서 왕래를 하고 지낸다.


삼성 자동차는 빅딜 대상이었다. 회사에 입사 후 1997년, 국내에는 외환위기로 IMF 사태가 발생하였고 그 이듬해에는 정부 차원에서의 대기업 간 구조조정이 이루어져서 삼성 자동차는 기아자동차 인수 실패 이후 스스로 매각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입사 2년 차에 본사에서 정비 현장인 도봉사업소를 자리를 옮긴 나로서는 다시 한번 위기에 놓이게 되었다. 회사는 순식간에 술렁거렸고 고용유지를 위한 직원들의 생존이 걸린 투쟁으로 영업현장과 정비 현장은 아수라 장이었다. 회사는 직원들의 구조조정을 하기 위해 명예퇴직으로 조건들을 제시하고 나를 포함한 많은 수의 직원들은 새로운 삶을 위해 회사를 떠났다.


내 나이 삼십 대 초반에 두 번째 직장 생활 2년 만에 다시 새로운 도전이 시작되었다. 마침 자동차 수출 폴딩 업무를 개업한 전 직장 선배인 박 사장으로부터 아프리카 가나의 중고 자동차 비즈니스의 지사장 자리 제안을 받게 되었다. 웬 난데없는 아프리카? 큰 애가 태어난 지 백일 즈음에 미국으로 간던 게 2년 전인데 이제 다시 딸내미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는 시기에 다시 머나먼 아프리카 땅으로 돈벌이를 떠나야 한다. 할까, 말까를 고민했던 아빠의 심정을 아이들은 알고 있었을까. 어린 시절 타잔 영화에서 보면서 추장의 딸고 결혼하면 어떨까 하던 그 소년은 결국 머나먼 땅으로 두 번째 무모한 도전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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