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신 아버지는 노년에 지하철 택배 알바를 하시면서 퇴근길에 꼭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렇게 물어보곤 하셨다. "만두요" 하면 그날 번 돈으로 만두를 사가시고, "족발이요" 하면 족발을 사가셨다. 평생 공무원 직장생활을 하시고 정년퇴직 이후에 몇 차례 사업을 시도하다가 잘 안 돼서 어머니를 생활전선에 뛰어들게 했다. 노년에 어머니 속을 태우시는 아버지가 많이 원망스러웠다.
하지만 작고하신 이후에 어머니로부터 들려오는 추억 속의 아버지는 나름 어머니를 위해 최선을 다해 사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어제 아침 출근길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려 아버지 흉내를 냈다. "어머니, 중국요리 중에 제일 드시고 싶은 게 무엇인가요? 제가 중식을 배우고 있으니 주말에 한번 해드릴게요."라고 말했다. 탕수육이나 깐풍기 내지는 양장피잡채 등의 대답을 기대했는데 의외의 답변이 들려왔다.
"해파리냉채가 좋다."
어머니는 진짜로 해파리냉채가 좋으신 건지, 아니면 아들이 힘들까 봐 간단한 해파리냉채라고 했는지 정확하게는 모르겠다. 그래도 메인요리는 필요할 듯해서 탕수육은 너무 흔하니 탕수생선살을 제안했더니 "좋다"라고 하신다. 내 머릿속에 우리 어머니가 제일 좋아하는 중식요리는 '해파리냉채'로 입력하고 주말 이른 아침 마트에 들러 염장 해파리와 대구살을 한 팩씩 샀다.
"해파리냉채가 좋다."
한식에서는 해파리 요리에 주로 겨자소소를 사용하지만 중식에서는 마늘소스를 곁들인다. 마늘소스는 마늘 3개를 으깨고 '설식소참(설탕, 식초, 소금, 참기름)'을 1:1로 섞어서 미리 만들어 놓는다. 염장된 해파리채는 물그릇에 담고 손으로 박박 문질러 씻기를 여러 번 반복해서 염분을 제거한다.
잠시 물에 담가두었다가 냄비에 물을 올리고 끓기 전 김이 올라올 정도(70도)에 해파리를 살짝 데친 후에 찬물로 헹군다. 너무 뜨거운 물에 데치면 고무줄처럼 딱딱해질 수 있음으로 주의해야 한다. 데친 해파리는 식초(1T)와 흰 설탕(1T)에 버무려 부드러워지면 물기를 짜내고 별도로 그릇에 담아둔다.
오이는 6cm 길이로 어슷하게 채를 썰어 준비해 둔 마늘소스와 해파리와 함께 젓가락으로 살살 버무려서 완성그릇에 소복하게 담아낸다. 소복한 윗부분에는 마늘이 얹어져 더욱 맛깔 스럽게 보인다.
시큼 달콤하고 약간 짭조름한 맛이 아삭한 오이와 함께 해파리의 졸깃한 식감이 입안에 착 달라붙는다. 더운 여름날 바닷가에서 몰아치는 파도의 거품을 보며 시원한 바닷바람이 얼굴을 스치는 상쾌하고 정신이 번쩍 드는 느낌이다. 어머니 입맛에 맞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