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짜인지 고수인지 도마 위에서 양파를 절단하는 모습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쓱탁, 쓱탁~'은 초짜의 소리이고 '다다다다~'는 고수의 소리이다. 물론 청각을 넘어 시각적으로 썰어 놓은 재료의 두께를 보면 초짜의 재료 두께는 들쑥날쑥 하지만 고수가 썰어놓은 재료는 자로 잰 듯이 일정하다.
초짜인지 고수인지 도마 위에서 양파를 절단하는 모습을 보면 바로 알 수 있다.
조리실의 신입들은 도마 위에서 난도질하는 선배의 칼솜씨를 부러워한다. 하지만 급식실에서의 최고의 고수는 따로 있다. 바로 야채 절단기이다. 자르고, 채 썰고, 다지기를 다재다능하게 연출한다. 그리고 속도도 빠를 뿐만 아니라 지치지도 않는다. 말 그대로 극강의 절단고수이다.
하지만 야채절단기를 '극강의 절대고수'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절단기를 사용하는 사람의 역량도 필요하다. 절단기에 들어가는 부속 칼날을 무엇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잘려 나오는 야채의 모양이 다르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사용하는 사람이 초짜면 극강의 절단고수도 초짜로 추락한다.
이번주 오전 조리 담당은 '야채 절단기'이다. 조리실에 출근한 지 두 달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사용방법을 숙지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지난번 담당이었을 때 첫째 날부터 손가락 화상으로 일을 제대로 배우질 못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아침조회시간에 레시피 리뷰할 때 조리장의 말이 허공에서 맴돌았다. 왠지 뭔 일이 벌어질 거 같은 싸한 예감마저 들었다.
쇠고기 야채죽에 들어갈 야채절단은 당근, 양파, 양송이버섯, 표고버섯이고 떡볶이에 들어갈 야채절단은 당근, 양파였다. 별로 어려울 것 없는 품목이었으나 여기에는 복병이 숨어있었다. 야채죽에 들어가는 양파와 당근은 다지기 모양이 나와야 하고 떡볶이에 들어가는 양파는 슬라이스로, 당근은 채 썰기로 나와야 한다.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전처리된 야채들이 절단기 옆으로 밀려오고, 부속 칼날들 챙겨서 조립하고, 썰린 야채를 담을 대야 챙기느라고 왔다 갔다 하면서, 야채들을 차례로 절단해 나갔다. 버섯류 다지기, 양파 다지기, 양파 슬라이스, 당근 다지기를 모두 마쳤을 때 왠지 뭔가 빠진 느낌이 들었다. 그때 마침 떡볶이를 만들던 선배가 당근채를 빨리 달라고 한다.
'에구머니나~' 당근을 모두 다지기 모양으로 만들어 버린 후였다. 결국 그날 1,500명의 아이들이 먹은 떡볶이에는 당근이 거의 보이질 않았다. 원래는 길쭉한 당근 채로 아싹아싹 씹혀야 하지만 오늘은 눈에 보일랑 말랑 하는 다진 상태였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색깔마저도 떡볶이국물과 비슷하니 더욱 당근은 보이지 않았다. " 미안하다, 얘들아! 다 이 아저씨 탓이다."
" 미안하다, 얘들아! 다 이 아저씨 탓이다."
" 미안하다, 얘들아! 다 이 아저씨 탓이다."
이번주 오후 담당은 '반찬통 세척'이다. 각자 맡은 담당이 있어서 반찬통은 오로지 나에게 맡겨진 소명이다. 회수된 반찬통(뚜껑이 있는 사각 스테인리스통)들은 한꺼번에 급식실로 몰리다 보니 순식간에 처리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다. 반찬통을 옮기는 사람, 잔반을 비우는 사람 그리고 세척하는 사람이 모두 다르다 보니 '합'이 맞지 않으면 충돌이 발생하기도 하고 체증이 일어나기도 한다.
총 150개가 넘는 반찬통은 어느새 날개가 달린다. 잔반통에 한번 '탁' 털고 바로 세척통으로 날아가 쌓인다. 쌓이는 동안 스탠 반찬통들은 서로 부딪혀 '탕~탕~' 충격음을 연달아 낸다. 마치 전쟁터에서 총을 쏘고 대포를 쏘는 듯한 굉음이 거의 두어 시간 내내 울려 퍼진다. 세척을 끝내고 나면 귀에서 '윙~' 하는 소리가 한동안 멈추질 않는다.
동료가 던진 반찬통이 물이 하나 가득 담긴 사각 세척통에 입수하면서 잔반 찌꺼기로 인해 지저분해진 물이 사방을 튄다. 가끔은 튕긴 물이 얼굴에 튀기기도 한다. 기분이 영 찝찝하지만 얼굴을 닦아낼 시간조차 긴박하다. 손에 잡은 수세미는 내려놓지 않고 계속 반찬통을 훑어내면서 옆에 있는 이단케리어에 차곡차곡 쌓는다. 쌓인 반찬통은 다음 프로세스인 자동 세척기계로 보내진다.
마치 컨베이어 시스템이 작동되듯이 한 곳에서 정체가 일어나면 대 혼란이 일어나기 때문에 정신을 집중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 초벌 세척된 반찬통이 모두 다음 작업단계로 옮겨지고 나면 주변(앞치마 캐비닛, 에어컨, 세면대)에 튄 찌꺼기들을 트리오 묻힌 수세미로 박박 닦고 물호스로 씻어낸다. 마지막으로 바닥 트렌치까지 깔끔하게 물청소하면 오늘하루가 마무리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지친몸을 이끌고 전쟁터에서 살아 돌아온 기분으로 학교 정문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