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들과 반찬을

04. 부찬 (초등학교 급식실에서)

by 소채

'칙~ 칙~' 급식실 왕언니는 가방에서 미스트를 꺼내 얼굴에 뿌린다. 스프레이통은 곧바로 옆에 언니에게 전달되고 다시 칙칙 소리를 뿜는다. 이른 아침 급식실 휴게실에 모여있는 조리원들 얼굴이 촉촉해진다. 중년의 남자 얼굴에 미스트 뿌린다고 뭐 달라질 게 있겠냐 만은 그래도 따라 해 본다. 11명의 조리원 중에 청일점인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곳에서 제일 많이 부르는 호칭은 '언니'이다. 그래서 나도 가끔은 언니라는 호칭을 쓰고 그녀들과 공동체를 이룬다. 또 다른 조리원 선배는 양말을 벗고 핸드크림을 발뒤꿈치에 바른다. 또다시 핸드크림이 한 바퀴를 돌아 내게로 온다. 나도 덩달아 발에 핸드크림을 바른다. 남자는 나이가 들수록 여성호르몬이 늘어든다고 하는데 이러다가 언니들 사이에서 점점 이뻐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다가 언니들 사이에서
점점 이뻐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이번주(4주 차)에 내가 맡은 담당은 반찬(부찬)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단독으로 반찬을 만드는 데에는 무리가 있어서 멘토 선배에게 수시로 물어보면서 언니와 함께 반찬을 만든다. 반찬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주찬(메인반찬)과 부찬(서브반찬)이 그것이다.


주찬은 주로 고기나 생선을 튀기거나 볶아서 조리되고 부찬은 야채를 조림이나 무침으로 조리된다. 이번주 목요일 메뉴로 나온 '골뱅이 쫄면무침'은 부찬이었다. '골뱅이 소면무침'은 새콤 매콤한 고추장 양념에 무쳐서 가끔 해 먹는 요리이다 보니 낯설지 않았지만 역시나 급식실 대용량 조리는 쉽지 않았다.


오이는 '돌려 깎기'로 채칼을 사용해서 내리고 사과는 통째로 채칼에 밀어 넣어 내린다. 당근, 양파, 깻잎을 자르고 골뱅이도 준비해서 커다란 사각통에서 골고루 섞어둔다. 한쪽에서는 식초, 소금, 고춧가루, 고추장, 사이다, 매실 농축액, 설탕, 깨, 마늘을 넣어 양념장을 만들어 놓는다.


얼마 전 조리장이 보여준 '분노의 무치기' 시범은 며칠이 지나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러던 중에 오늘 다시 무치기를 맞이했다. 요리의 마지막 단계로 쫄면을 해동시키고 끓는 물에 넣어 익인후 찬물에서 2번 정도 마구마구 비벼댄 후에 물기를 뺀다. 충분히 식은 면과 양념장을 비비고 거기에 다시 야채를 섞고 조리장이 했던 것처럼 양팔을 한동안 미친 듯이 휘저으니 정신이 어질어질하다. 괜히 따라 했나 싶다.


조리와 배식을 마치고 나니 앞치마, 고무장갑에는 양념장 파편들이 튀어있어 얼른 세척한 후에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 중에 선배언니가 지나가는 말로 건넨다. "골뱅이를 너무 열심히 무치신 거 같네요. 조리모에~ ㅎㅎ" 하얀색 모자를 벗어보니 시뻘건 고추장 양념장이 장난이 아니었다. 확실히 초짜는 초짜인 듯하다.


확실히 초짜는 초짜인 듯하다.




오후에 맡은 업무는 집기류 세척이다. 집기류는 집게, 롱스푼, 밥주걱, 국자를 말한다. 50여 개의 반에 급식된 점심과 함께 파란색 플라스틱통에 반별 인원수에 맞게 식판, 그리고 집기류도 배송되었다가 회수된다. 회수된 파란색 플라스틱통에서 식판을 식판세척팀에서 회수하고 나머지 집기류를 내가 맡은 싱크대에 쏟아붓어준다. 마치 어미새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모양으로 싱크대속으로 집기류가 미끄러져 들어온다.


싱크대에는 따뜻한 물과 세제가 섞여있다. 고무장갑 낀 손으로 뻑, 뻑 소리가 날 정도로 문지른 후에 바로 옆에 있는 깨끗한 물이 있는 옆칸 싱크대로 밥주걱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던져 넣는다. 밥주걱은 별도로 수세미로 문질러서 밥풀을 제거하는 중간과정을 거친 후에 던져 넣는다. 깨끗한 물이 담긴 싱크대에서 다시 한번 훌러덩, 훌러덩 손으로 뒤집기를 몇 차례 한 후에 각각의 집기류 통에 분리해서 집어넣으면 세척이 완료된다.


세척이 완료된 집기류 통들은 다시 건너편 싱크대에 옮겨 진후에 잠시 대기했다가 뜨거운 물속에 잠수를 시켜서 열소독을 한다. 이렇게 작업을 끝내면 다른 조리원들보다 일찍 끝난다. 거기다가 이번주 오후 세척작업은 허리도 덜 아프고, 손도 덜 저린다. 한마디로 꽃보직 담당이다 보니 여유롭다. 매주 이랬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다음 주는 힘든 식판 세척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매주 이랬으면 얼마나 좋으련만
다음 주는 힘든 식판 세척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사진] (좌) 무침용 사각통 (중앙) 식판과 집기류 (우) 파란 플라스틱 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