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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an 01. 2024

난, 해 본 남자

2024년 신년산행(관악산)

"자네, 해보기는 해 봤나?"라는 말은 고 정주영 회장(현대)이 생전에 자주 쓰던 말이다. 30년 전에 신입사원 교육 때 처음 들었던 문구이다. 불가능은 없다는 신념을 갖고 회사생활에 임하라는 회사 측의 요구사항이기도 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결국 나는 그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다. "난, 해 본 남자입니다."


올해 첫 신년산행은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한 관악산 일출산행이다. 해가 뜨는 시간은 7시 30분경, 사당역에서 모이는 시간은 6시 30분이다. 역으로 계산하면 5시경에는 일어나야 모임시간에 맞출 수 있을 듯했다. 새벽형 인간에게 5시 기상은 평소대로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하필이면 전날 무리한 송년회로 인해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도착해서 다소 불안한 느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올해 첫 신년산행은 동호회 회원들과
함께한 관악산 일출산행이다.




습관이 무섭긴 무섭다. 새벽 5시쯤 되니 눈이 번쩍 떠졌다. 전날 챙겨둔 배낭에 우선 뜨거운 물과 원두커피를 챙겼다. 평소 산행이라면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겼겠지만 오늘은 달랑 '일출산행'이다. 떠오르는 해만 보고 바로 하산하는 일정이다 보니 별도의 먹거리는 챙기지 않았다. 대신 아이젠, 헤드라이트, 핫팩 그리고 여분의 모자와 장갑을 배낭에 쑤셔 넣었다.


모임장소에 조금 일찍 도착해서 기다리다 보니 아는 얼굴도 보이고, 새로운 얼굴도 보인다. 오랫만에 함께하는 반가운 등반대장은 예상대로 빨간 재킷을 입고 나타났다. 멀리서도 잘 보이는 거구의 빨간 등산복은 어느새 등반대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날씨가 좀 풀리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는 차가운 새벽 공기를 가르며 도시의 네온사인을 벗어나 새벽어둠 속으로 들어간다.




관음사를 지나 첫 번째 공터에 이르러 잠시 숨을 고른다. "예, 저는 67. OOO입니다."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마치고 다시 어둠을 뚫고 산을 기어오른다. 헤드렌턴과 아이젠의 도움을 받으며 가뿐 숨을 몰아쉬며 온몸의 근육이 팽팽하게 부풀어 올랐을 즈음, 능선의 어깨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직 태양은 떠오르지 않았지만 대지가 훤하게 깨어나 헤드랜턴을 끄고 마지막 안간힘을 써서 '전망대(관음사 국기봉)'에 도착한다.


일행이 해돋이를 맞이할 사이트는 작년과 동일한 장소인, 전망대 바로 아래 위치한 암릉지대이다. 서둘어 바위에 기어올라 겨울 새벽하늘을 배경으로 실루엣 사진을 찍어본다. 그러는 사이 저 멀리 구름과 운무사이로 빼꼼히 해가 떠오른다. 2024년 첫해가 떠오른다. 여기저기서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오고, 뜨거운 햇살은 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해 본 남자가 되었다.

뜨거운 햇살은 내 마음속으로 스며든다.
나는 해 본 남자가 되었다.


*사진출처: 밴드 '길을 걷는 사람들(길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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