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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Feb 08. 2024

밀려드는 주문에 호흡이 가빠진다.

딤섬전문점 알바 3일 차

'딩동, 딩동~' 음식이 주문될 때마다 주방에서 주문인쇄기가 알림음을 내면서 연신 두루마리 종이를 쏟아낸다. 통장에 돈이 입금될 때 들리던 행복한 알림음은 어느새 심장이 쫄깃해지는 공포의 알림음으로 변했다. 군대 기상나팔 소리가 군인정신을 일깨워주는 소리이듯이 주문기 알림음은 뇌가 극도로 활성화되면서 온몸의 근육에 준비태세를 갖춰야 하는 긴장감을 준다.


초짜 알바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주방에서 제일 쉽다고 하는  '찜기담당'이다. 딤섬 전문점이다 보니 찜기를 이용해서 딤섬을 쪄내야 한다. 출근 첫날, 선배에게 일하는 요령을 순식간에 배웠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하게 순식간에 배웠다. "주문이 들어오면, 해당 딤섬을 찜기에 올려두고 타이머를 누르고, 알람음이 울리면, 꺼내주면 됩니다. 끝"


초짜 알바에게 주어진 첫 번째 미션은
주방에서 제일 쉽다고 하는 '찜기담당'이다.




연신 뜨거운 증기를 내뿜고 있는 찜기의 구멍은 6개다. 한 구멍마다 최대 5개의 찜통을 차례로 쌓아 올릴 수가 있다. 이론상으로는 총 30개의 딤섬 주문을 소화할 수 있다. 하지만 보통 테이블 별로 주문을 하다 보니 동시간에 주문하는 요리의 수는 한 개, 두 개 내지는 세트메뉴에 따라 달라진다. 어찌 되었던 주문 알림음과 동시에 주문서를 뜯어내서 테이블에 올리고 메뉴를 확인한다.


딤섬은 테이블 하단 냉장고에 보관되어 있다. 왼쪽 냉장고에는 자주 나가는 3가지 메뉴(하가오, 샤오롱바우, 새우부추)가 있고 오른쪽 냉장고에는 빈도수가 적은 3가지 메뉴(시우마이, 오징어, 닭발)가 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상온에 두어도 되는 3가지 메뉴(차슈바오, 피기번, 연잎)가 있다. 그러고 보니 대략 9가지의 딤섬 메뉴를 주문에 따라 6개의 찜기에 올리면 되는 간단한(?) 공정이다.


9가지의 딤섬 메뉴를 주문에 따라
6개의 찜기에 올리면 되는 간단한(?) 공정이다.




다행히도 출근 전에 메뉴를 예습해 가기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다. 별다른 사전교육 없이 유니폼을 지급받고 비좁은 탈의실에서 후딱 갈아입은 후 곧바로 주방으로 투입되었다. 간단한 조리 방법과 선배가 하는 것을 잠시, 아주 잠시 눈으로 익히자마자 바로 업무가 시작되었다.


'주문서 보고 메뉴를 확인하고, 딤섬을 챙겨, 찜기에 올리고, 타이머(5분 30초)를 누른다.', '타이머 알람이 울리면 알람을 끄고, 찜기를 꺼내고, 뚜껑을 덮고, 홀 쪽으로 내준다.' 하나하나 순서대로 진행하면 무리가 없다. 하지만 주문이 밀리면 주문서 알림음과 타이머 알람이 동시에 울리면서 동선이 꼬이기 시작한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찜기에 딤섬은 올렸는데 타이머를 누르지 않은 찜기가 발생한다. 나중에 알아채고 식겁해서  타이머를 누른다. 두 개를 주문했는데 한 개인 줄 알고 요리를 불출했다가 다시 부랴부랴 나머지 한 개를 찜기를 올린다. 멘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홀서빙으로부터 딤섬이 제대로 익지 않아 다시 해달라는 주문도 발생한다.


주문서와 찜기를 잘못 짝지어 내보내서 재확인 요청까지 들어온다. 정말이지 환장할 노릇이다. 정신이 혼미하고 멘털이 완전히 가출해 버린다. 그냥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하지만 제일 쉽다는 찜기 담당에 쩔쩔매는 나 자신이 부끄럽기도 하고 한심하다는 생각에 다시 한번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그래도 1일 차, 2일 차를 지나고 3일 차가 되니 실수가 많이 줄었다. 이젠 좀 할 만 해졌다.


3일 차가 되니 실수가 많이 줄었다.
이젠 좀 할 만 해졌다.
[사진] 테이블 하단 냉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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