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채 Apr 22. 2024

국수사발이 꼬꾸라지다.

딤섬전문점 알바생활

육수가 찰랑찰랑한 '마라우육탕면'은 아직 고명을 담지 않은 상태에서 수채통으로 버려졌다. 수채통에 처박힌 노란색 면발을 보니  갑자기 울컥하는 기분이 들었다.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버려진 면발은 나를 향해 울부짖는 듯한 느낌이다. "왜, 육수가 펄펄 끓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면에 부어야지, 끓지도 않는 육수를 부어서 결국 이런 사단을 만들고 난리야!!!"라는 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듯했다.


 '마라우육탕면'은
수채통으로 버려졌다.


육수통은 하루종일 뜨거워진 상태를 유지한 채로 국수면이 익으면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육수를 부어서 서빙된다. 계속해서 육수를 퍼담다 보니 육수양을 줄어들고, 또 다른 육수통에 담겨 있는 식은 육수가 불위에서 계속 뜨거움을 유지하는  육수통에 채워지게 된다. 그러다 보니 추가 육수를 채우고 나서 바로 면에 담으면 약간 미지근해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육수가 끓은 후에 면에 붓는다.'라는 절대적인 규율이 정해진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주부터 불위의 육수통사이즈가  두배로 늘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육수를 추가하고 다시 끓이려면 아무리 불을 최대로 올려도 평소 시간보다 훨씬 더 걸린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몰려드는 식당손님들의 주문서를 제시간에 처리하기 위해서는 손, 발, 머리가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주문서에 인쇄된 메뉴를 눈으로 인식하는 순간, 모든 프로세스는 저장된 로봇의 프로그램처럼 순차적으로 수행된다. 주문서를 쫄대에 꼽고, 면을 꺼내 해면기에 넣고 타이머를 누른다. 면이 익으면 육수를 붓고 재료를 넣으면 끝이다.


'마라우육탕면'은 1분 30초, '완툰탕면'은 3분 10초면 마무리된다. 모든 주문은 은 한꺼번에 밀려오다 보니 조리해야 할 메뉴는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다 보면 중간에 육수가 다시 끓기를 기다리는 것은 모든 순차적인 프로세스에 버퍼링이 생기면서 프로그램에 오류가 발생한다. 아쉽게도 빠르게 주문을 소화하려는 과한 의지는 다시 한번 완툰탕면에 끓지않는 육수를 붓는 상황을 만들었다.




매의 눈으로 옆에서 지켜보던 선배는 다시 한번 완툰탕면 두 그릇을 수채통에  냉정하게 쏟아부었다. "젠장, 그게 쓰레기통에 버릴 정도인가?" 하는 욱하는 감정이 다시 한번 치밀어 올랐다. 정신없이 주문을 소화하려는 의지는 무참히 짓밟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새파랗게 어린 선배동료의 심통에 화가 머리끝까지 나면서 내 머릿속에는 국수사발을 집어던지고 뛰쳐나가는 상상으로까지 이어졌다.


가까스로 화를 누르고 바로 육수의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 국수그릇에 육수를 담아 들이켰다. "앗, 뜨거워!" 끓지는 않았지만 워낙 육수통이 크다 보니 전체적으로는 고온을 유지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린 선배동료에게 따질까 말까 순간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크게 심호흡 한번 하고 다음 주문서를 재빠르게 스캔하고 몸을 움직였다. 퇴근길에 아까 그 어린 선배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수고하셨습니다."


어린 선배를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
"수고하셨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매운 국수, 마라우육탕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