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성찰 단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채 May 03. 2024

얘들아, 나도 놀고 싶다.

교수생활 3개월 차 (아우스빌둥 특별반)

"교수님, 오늘 저녁에 대전 가는 친구가 있어서 카풀 얻어타고 집에 가고 싶은데, 혹시 내일 수업 따로 들으면 안 될까요?"  수업을 수강하는 한 학생으로부터 카톡 문자가 왔다.  황당한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냉정을 유지하면서 답장을 보냈다. "수업 빠지면 결석입니다. 차후 개별 보강은 없습니다. 이제 본인이 한 행동은 본인이 책임을 져야 할 때입니다!!!"  물론 학생의 입장에서는 나름 예의를 갖춰서 문의를 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 학생의 집은 대전이고, 학교는 보령시에 있다보니 학교 기숙사 생활을 한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반, 공부하기 싫은 마음 반'으로 그런 문의를 한 것이 아닌가 싶다. 또 한편으로는 '혹시나 내가 가르치는 과목이 재미가 없어서 그런 건가' 아니면 '화창한 봄날에 스무 살 피 끓는 청춘을 교실이라는 장소에 묶어두기 때문인가?'' 하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1년 전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고등학교 학생이었다. 3학년 때 한독상공회의소에서 주관하는 특별프로그램에 지원해서 수입차 서비스센터에 이미 취업이 상태이다. 취업된 상태에서 학기 중에는 대학에서 수업을 듣고 방학에는 회사에서 일을 하는 프로그램이다.


학기 중에는 일은 하지 않지만 회사에서 대학등록금에 맞먹는 월급이 지급된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대견한 일이고,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뿌듯한 일이다. 남학생들은 1학년 1학기가 끝나면 바로  '자동차 정비병'으로 군복무를 다녀온다. 쉽게 말해 수업을 듣고 있는 남학생들 모두 몇 달 후에는 모두 군대에 입대하는 상황이다.


취업한 직장인이고, 인제 성인이 되었고, 캠퍼스의 자유로운 생활을 즐기고 싶고, 몇 달 있으면 군대를 가는 상황이다.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수업시간에 집중이 안되고 단축수업이나 휴강에 열광하는 것이 해가 되기도 한다. 속으로는 '얘들아, 나도 놀고 싶다.'라고 생각이 들기는 하지만 차마 그렇게 이야기는 못하는 대신 다시 한번 아이들을 다독여 본다. "얘들아, 조금만 힘을 내보자!  나를 도와다오, 플리~~~ 즈!!! "


"얘들아, 조금만 더 힘을 내보자!  
나를 좀 도와다오, 플리~~~ 즈!!! "




1986년 화창한 봄날, 대학 새내기들은 신이 났다. 고등학교 때와는 다르게 누군가가 공부하라고 잔소리를 하지도 않고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는 것에 대해 눈치를 보지도 않았다. 학교 앞 당구장에서 당구를 쳐도 누가 뭐라 하는 사람도 없었다.


동호회 선배들은 후배 새내기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술을 사주기도 하고 미팅을 시켜주기도 한다. 고등학교 때 수업이 대학진학을 위한 숨 막히는 시간들이었다면 대학 수업은 마음만 먹으면 대출(대리출석)을 하거나 몇 번 빠져먹어도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화창한 봄햇살이 캠퍼스 안에 있는 호수에 부딪쳐 반짝거리는 오후가 되면 수업시간에 미친 듯이 교실을 뛰쳐나와  나무그늘 밑에서 막거리를 마시며 개똥철학을 시부렸다.여름날 비가 오면 수업을 땡땡이치고 학교정문 앞 파전집에서 내리치는 빗소리를 들으려 점심식사 대용으로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해서  밤이 어둑해질 때까지 놀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던 놈이 30여년이 지나 이제는 교수타이틀을 달고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기를 바란다. 참말로, 세월이 나를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참말로, 세월이 나를 아이러니하게 만든다.  
[사진] 토론하고, 작성하고, 발표하고 (그러는 와중에 누군 잠을 자고)
매거진의 이전글 김씨 아저씨, 아님 김교수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