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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un 16. 2024

바위에서 잠을 잔다고

백패킹 후기(강화도 앞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암릉 박지, 아니면 명품 박지?' 백패킹 동호회 선배로부터 문자가 전달되었다. 무슨 말인지 머릿속에서 모든 등산 관련 정보를 총동원해서 독해하려고 했지만 정확한 뜻을 이해하기 힘들었다. '박지'라고 하면 산에서 텐트 치고 잠을 자는 곳을 말한다.


'암릉 박지,
아니면 명품 박지?'


한 달 전에 동호회 게시판에 전망이 기가 막힌 텐트 사진과  함께 강화도 백패킹 공지가 올라왔고 주저 없이 참가신청을 했다. 다른 회원들은 선발대로 아침부터 박지를 향해서 출발을 했고 나는 오후 늦게서야 강화도로 출발했다. 워낙 백패커들 사이에서 아름아름 소문이 난 곳이다 보니 먼저 선점을 하지 못하면 낭패다.


선점하지 못하면 하산해서 캠핑장에서 텐트를 치거나 아니면 새로운 박지를 찾아 나서야 한다. 한마디로 '박지 쟁탈전'이 치열한 곳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정오쯤 사진 몇 장과 아까 그 메세지가 단톡방에 올라왔다. 바위 위에 설치된 텐트 사진과 데크에서 타프를 치는 모습이다. 일단 고지 탈환은 성공이다.




지인들은 가끔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한다. 물론 주말에 안락한 소파에 하루종일 몸을 던져놓고 시원한 맥주나 수박을 먹으면서 넷플릭스로 힐링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나라는 인간은 그런 부류에 속하지 못한다. 어떻게든 몸을 움직여야 한다. 박배낭을 메고 산을 오르는 행위도 그중에 하나이다.


20 킬로그램 짜리 배낭을 둘러메고 산을 오르면 숨이 가빠지고 땀이 비 오듯이 등줄기를 타고 흘러내린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몸은 고통스럽지만 정신은 맑아진다. 잡생각이 없어지고 오직 살아내야 한다는 강한 생존력이 발동을 한다. 심장의 박동수가 빨라질수록 생존의 집착은 강해진다. 죽을 둥 살 둥, 후달거리는 다리근육이 한계점에 다다를 때면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한다.


목적지에 도착하면 루틴적인 나만의 의식을 치른다. '헬리녹스 의자'를 꺼내고 거의 눕다시피 깊숙이 앉아 호흡을 가다듬고 배낭에서 '유산균 음료'를 꺼낸다. 눈앞에 펼쳐진 풍광을 안주삼아 한 사발 쭈욱 들이키면 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어진다. 그리곤 아직 살아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에 스스로 도취된다.


아직 살아있다는 안도감과
성취감에 스스로 도취된다.




일을 마치고 토요일 오후 늦게서야  목적지에 도착해 보니 텐트 두동은 정상데크에 설치되었고, 다른 두동은 암릉 위에 설치가 되어있었다.  아직 테크에도 텐트 한동 정도 여유자리가 있었고, 저 멀리 바위 위에도 여유공간이 보였다. 선배가 보낸 메시지 의미를 그때서야 이해했다.


'암릉 박지'는 바위를 말하는 것이었고, '명품 박지'는 테크 위에 설치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평소의 소신대로라면 나의 선택은 안전을 고려해서 당연히 '명품 박지' 였을 것이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암릉 박지'에 파란색 텐트를 설치했다. 물론 마음속에는 '바람 불면 텐트가 날아갈 수도 있지 않을까?' , ' 자다가 뒤척이면서 혹시라도 굴려 떨어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온갖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오늘 아니면 언제 바위 위에서 자본단 말인가.' 하는 '도전 정신' 내지는 '또라이 정신'이 발동된 것이다. 달빛에 비치는 야간 윤슬을 바라보며 화합의 장을 마치고 텐트에 눕자마자 곯아떨어졌다. 한 번도 안 깨고 아침을 맞이했다. 왠지 산의 기운과 바위의 기운이 땅을 뚫고 온몸으로 충전된 느낌이다.  왠지 조만간에 다시 찾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왠지 조만간에
다시 찾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 BPL(Backpacking Light, 배낭은 가볍게) & LNT(Leave No Trace, 흔적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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