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곡의 냉수는 뒷목을 거쳐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결국은 장딴지를 지나 발바닥을 마지막으로 내게서 멀어져 간다. 푹푹 찌는 여름날씨로 인해 뜨거워진 몸은 계곡물속에 잠기자마자 상쾌한 냉기의 찌릿함으로 오래 버티기 힘들 정도이다. 애초에는 계곡에 발만 담가 더위를 식히려고 했으나 그게 말처럼 되지를 않는다. 일명 '알탕'이라고 하는 것의 유혹을 떨치기 힘들다.
계곡의 냉수는 뒷목을 거쳐 등줄기를 타고 내려간다.
산꾼들은 무더운 여름날에도 산을 오른다. 한낮의 기온이 40도를 육박하는 날씨에는 가만있어도 땀이 쭈르르 흘러내리지만 산을 오르면 비 오듯이 흘러내린다. 그렇게 헉헉거리면서 정상을 찍고 하산하는 길에 계곡물이라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온 미끄러지듯이 물속에 몸을 담근다. 살짝 말고 아주 푹, 상반신까지 담근다.
대장간에서 달구어진 쇠가 물속에 넣으면 찌지직 하고 소리를 내듯이 몸속의 열기가 냉한 기운으로 가득 찬다. 그걸 바로 '알탕'이라고 하는데, 웬만한 산꾼들은 그 중독성을 끊기가 힘들다. 오랜만에 그 기분을 경기도 가평의 서리산 계곡에서 한껏 느껴본다.
강화도 마니산 함허동천에 있는 캠핑장은 부대시설이 잘 갖춰진 곳이리고 하면, 이곳 캠핑장은 달랑 간이화장실만 있는 자연 그대로에 가까운 캠핑장이다. 백패커 중에는 등산로가 아닌 비탐길을 올라 사람의 흔적이 없는 자연 숲 속 아주 깊은 곳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고, 접근성이 좋고 시설이 잘 갖춰진 캠핑장을 선호하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 보면 서리산 캠핑장은 그 중간 정도에 있다고 보면 된다. 주차장에서 이백미터만 오르면 자연 숲 속 그대로인 잣나무숲이 나온다. 텐트를 치기 편하게 땅이 고르게 평탄화 작업이 돼있다. 대략 잡아 약 100개 정도의 텐트는 충분히 설치할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이다.
캠핑장 어르신에 따르면 보통 하루에 대여섯 팀만 받는다고 하니 하룻밤 동안 한적한 숲 속을 느끼기에 충분하다. 야영장 바로 옆에는 얼음처럼 차가운 계곡물이 흐르다 보니 숲 속의 공기는 바깥공기 대비해서 상대적으로 서늘한 느낌이 든다. 한여름밤의 찬 공기는 새벽잠을 설치게 한다.
한여름밤의 찬 공기는 새벽잠을 설치게 한다.
퇴직하고 반백수로 지내다 보니 따로 여름휴가를 떠나기가 민망하기도 해서 가볍게 계곡물에 발이라도 담가볼 요량으로 친구와 함께 캠핑장을 찾았다. 서울 인근 휴게소에 차를 주차하고 한차로 한 시간 반을 달려 경기도 가평에 있는 잣나무숲에 도착했다. 박배낭을 내려놓자 마자 후다닥 의자와 테이블부터 조립한다.
스스로를 위한 '웰컴 드링킹' 시간이다. 오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사 온 얼음볼컵에 맥주와 소주를 따르고 한잔 쭈욱 들이킨다. 차가운 액체가 식도를 지나 내장을 지나면서 찌릿찌릿한 전율이 온몸에 퍼진다. 은은한 잣나무 향과 피톤치드는 기분을 살짝 들뜨게 하고 힘차게 내리치는 지척의 계곡물소리는 심장을 박동 치게 한다.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한껏 좋아진다. 오로지 이 시간, 이 공간은 '나를 위한 시간', '나을 위한 공간'이라는 만족감에 푹 빠진다. 텐트를 설치하고, 계곡물에 알탕도 하고 나서 본격적으로 숲 속의 힐링타임을 가진다. 서리산 캠핑장은 또 다른 나의 케렌시아가 되어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