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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채 Jul 07. 2024

음식을 입으로만 먹는다고

요리에 대한 반성

식탁에 간장게장과 양념게장이 한 마리씩 올라왔다. 평소 장모님 표 간장게장을 좋아했지만 최근에는 힘이 부치신다고 직접 간장게장 담그는 것을 그만두셨다. 그러다 보니 한동안 그 맛을 잊고 있었는데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가, 매일 배달되는 택배상자를 통해 드디어 식탁 위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내 몫으로 배당된 간장게장 한 마리와 양념게장 한 마리를 쪽쪽 팔아먹고, 밥공기에 살과 내장을 털어 넣고 참기름과 김가루, 게장국물로 싹싹 비벼먹었다. 밥 한 공기를 비우고 간장게장 바닥에 남은 양념까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했다. 빈 그릇을 보고 아내가 한마디 한다. " 어머님이 키우실 때 밥 차려줄 때마다 흐뭇하셨겠네요." 맞는 말이다. 나는 밥을 먹으면 남기는 법이 없다. 학창 시절 신조가 '지각은 해도 밥은 먹는다' 였을 정도였다.

밥을 먹으면
남기는 법이 없다.




잘 생각해 보면, 배가 고파서 밥을 먹은 적은 그리 많지 않다. 항상 배가 불러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그런 상태에서 밥시간이 되면 밥을 먹고, 그리고 남기지 않고 먹는다. 물론 지금은 간헐적 단식과 채식을 시작한 지 벌써 3년이 다 돼 가다 보니 밥을 먹을 때마다 배가 고프기는 하다. 어찌 되었던 음식에 대한 나의 오래돼 습관은 배만 부르면 모든 것이 '만사 OK'이다. 


배만 부르면
모든 것이 '만사 OK'이다.


그것이 거친 음식이던 부드러운 음식이던 비싼 요리이던 싸구려 요리이던지 가리지 않는다. 최근에 요리를 배우고 요리기능 자격증을 취득을 하면서 음식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음식 재료 선정부터 전처리를 거쳐 지지고 볶고 튀기고 마지막에 데코레이션을 하는 일련의 과정을 수행하면서도 요리를 대하는 1차원적인 습관은 쉽게 변하지 않았다.




며칠 전에 서울 모처 빵 맛집에 들러 핫(hot)하다는 빵을 맛볼 기회가 있었다.  '블랙 올리브, 플레인 스콘, 뺑오쇼콜라' 한 개씩을 주문했다. 나름 브런치에서 '푸드 분야 크리에이터'로 활동하는 나에게 빵 맛을 음미해 보고 표현해 보라는 요청이 들어왔다.  그 요청에 대한 대답으로 "빵이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이 든다."라고 말을 해 놓고 스스로 '맛 표현력'에 대해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어찌하다 보니 크리에이터가 되기는 했지만 나에게는 '절대미각'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냥 대부분의 먹거리가 모두 맛있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그냥 행복해진다. 매슬로우의 욕구 5 계설을 따지지 않더라도 '식욕해소는 곧 행복'을 불러온다. 나의 궁색한 표현에 친구가 한마디 한다.


훌륭한 요리는 먼저 눈으로 맛을 보고(잘 구워진 색깔과 바싹할 거 같이 느껴지는 식감), 코로 맛을 보고(방금 구워낸 향긋한 빵과 버터의 자극적인 냄새) 그리고 입으로 맛(충분히 발효되어 부드러우면서도 쫄깃한 식감)을 느껴야 한단다. 그 말을 들으니 백퍼공감이 된다. 한수 배웠다! 요리를 대하는 마음자세가 달라진다.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먹는다.'

 '음식은 입으로만 먹는 것이 아니라,
오감으로 먹는다.'

*사진: 인터넷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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