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성찰 단상

강여사 전상서(2)

팔순을 앞두고

by 소채

"여보, 올해 어머님 생신이 팔순 아닌가요?" 아내의 말에 화들짝 놀라 인터넷을 검색했다. '올해 팔순은 몇 년생?'이라는 문구를 입력하니 바로 '1945년생, 닭띠'이라는 글귀가 보인다. 올해가 2024년이고 1945년생이면 얼추 계산하면 팔십이 나오지를 않는다. 얼마 전 정부에서 발표한 나이계산법으로는 '79세'이지만 그래도 오래된 문화적 관습에 따라 분명히 '팔순'이 맞다.


"여보, 올해 어머님 생신이 팔순 아닌가요?"


생신이 8월이니 며칠 안 남았다. 일단 모친에게 전화를 드려서 날짜, 장소, 참석대상을 상의하고 식당을 물색했다. 날짜는 2주 뒤 토요일, 초청대상자는 외가댁 친적어른들, 장소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룸이 있는 중식당 코스요리로 정했다. 마음 같아서는 동네잔치라도 벌이고 싶지만 요즘 정서와는 맞지 않아서 규모를 축소하다 보니 하나뿐인 아들 마음이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다.




반백년 전 어느 날, 스무 살의 꽃다운 서울 아가씨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7살이나 많은 노총각을 만나서 어떤 로맨스를 만들었을지 상상해 봅니다. 물론 그 사랑의 결과로 제가 태어나서 축복을 받았지만 정작 당신의 인생은 순탄하지 않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래된 출생일기를 꺼내 먼지를 툭툭 털어 과거를 소환해 봅니다.


낯선 곳에서의 어린 새댁의 시집살이는 외로움과 그리움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꿋꿋하게 잘 참아내시고 잘 살아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때로는 말 잘 안 듣는 성깔 있는 남편 때문에 속도 많이 상했고, 하나뿐인 아들 때문에 애도 많이 태우셨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걱정할 일은 없습니다. 남은 인생, 건강하게 꽃길만 걸으시길 기원드립니다.


남은 인생, 건강하게 꽃길만
걸으시길 기원드립니다.




회현동 외가댁 쌀집시절, 장남이신 듬직한 첫째 외삼촌이 집을 나설 때면 외할머니는 늘 생계란 양쪽을 깨서 건네주던 모습이 생생합니다. 덕분에 저도 꼬맹이시절, 생에 처음으로 날계란을 꿀꺽꿀꺽 목 넘김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마음 따뜻한 둘째 외삼촌은 언제나 모친 곁에서 어려운 일이 생기면 말없이 도와주시곤 했습니다. 퇴근 후에 누나네 가게에 와서 묵묵히 고장 난 기계들을 고쳐주고 돌아가던 뒷모습이 아직도 제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자유로운 영혼인 셋째 외삼촌에 대한 추억의 사진 한 장은, 쌀집 문간방에서 멋진 기타 연주도 들려주고 기타 코드도 알려주셨던 모습입니다. 그때부터 어린 저에게 자유로운 영혼과 예술적 감성을 심어 주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마트하고 멋진 막내 외삼촌의 글씨체를 따라 하겠다고 엄청 연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덕분에 군대에서도 차트 글씨 쓰고, 연애편지도 멋지게 손 편지 쓰고 했네요. 아직도 그때 배운 글씨체가 이쁘다는 얘기를 자주 듣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겹겹이 쌓인 추억만큼이나 어머니의 인생에 함께해 주신 외삼촌들, 외숙모님들 그리고 모든 외가댁 친척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항상 함께 했기 때문에 행복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항상 함께 했기 때문에
행복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좌) 강여사님 신혼 초 (우) 아직도 보관 중인 출생일기


* 대문사진: '6th JUNE '68, 사직 park'라고 사진 뒷면에 쓰여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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