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내리고 필사를 시작한다. 어지럽게 펼쳐진 생각들이 책 속 행간의 줄처럼 바르게 제자리를 찾아 가라앉는다. 한 줄 한 줄 글이 스며들 때마다 백열등 아래 구부렸던 어깨가 조금씩 펴지고, 창가에서 제 몫을 다하고 있는 목련에 눈이 머문다. 바쁘다는 건 마음의 소리일 뿐, 시간은 언제나 같은 속력으로 흐른다. 뜨거운 차를 호르르 넘기며 한 달째 같은 책을 넘기는 이 시간이, 내가 유일하게 마음을 펼쳐내는 시간이다.
얼마 전, 손글씨로 필사된 엽서가 담긴 액자 하나가 집으로 날아왔다. 필사 모임에 처음 참여하고도 오프라인 모임은 시간이 빠듯해 나가지 못했는데, 모임에서 나눈 거라는 짧은 메모가 함께였다. 히라가나가 적힌 눈깔사탕은 덤으로 담겨 있었다.
하루에 수십 개의 메시지가 오간다.
빠르고 편리하지만 읽고 나면 금세 흘러가 버린다. 그런데 손글씨는 다르다. 누군가 자리에 앉아 종이를 펼치고, 펜을 고쳐 쥐고, 한 자 한 자 눌러쓴 시간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삐뚤거리는 획에도, 살짝 힘이 풀린 끝선에도, 쓴 사람의 숨결이 배어 있다. 택배를 받는 일도 일상이 된 요즘이지만, 숨 쉬듯 적힌 그의 손글씨가 마음을 흔든 건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손을 모아 연필을 잡은 그 진지한 미간을 상상했다.
설탕색 바탕에 주황빛 띠를 두른 눈깔사탕을 입에 물고 한쪽 볼만 볼록 내밀며, 나도 글을 쓴다. 손에 힘이 모이고, 달콤한 것이 천천히 내려간다. 삐뚤삐뚤 눌린 획 하나에 말보다 먼저 닿는 온기가 있다. 이런 작고 조용한 것들이,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