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죽

by naeun

아침마다 진죽을 끓인다.

맷돌에 간 쌀을 물에 풀어 천천히 젓다 보면, 솥 안에서 뽀얀 김이 오른다.

어머니가 아플 때마다 먹던 것이 진죽이었다. 쌀을 갈아 오래 저으면 죽은 부드럽게 풀어졌고, 그 김 속에서 어머니의 얼굴도 조금씩 풀리듯 환해졌다. 아픈 사람에게는 진죽만 한 게 없다고 했다. 나는 그 말을 오래 믿어왔다.

그래서인지 너와의 이별도 자꾸 진죽을 닮아간다.

우리는 맷돌에 함께 갈린 쌀알 같았다. 단단한 모양을 잃고 서로에게 섞였다. 이제 와 따로 건져낼 수 없는 것들. 부서진 채로야 비로소 한 몸이 되는 것들.

가끔은 너를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나는 늘 너를 빛 쪽에 세운다. 네가 만든 그늘 아래 서서 숨을 고른다. 떠난 사람의 그늘이 이렇게 오래 남을 줄은 몰랐다.

죽이 끓는다.

나는 나무주걱으로 천천히 바닥을 긁는다. 급하게 저으면 눌어붙는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이별도 그런 것인지 모른다. 서두르면 타버리고, 천천히 저어야 겨우 넘길 수 있는 것.

김이 오를 때마다 네 얼굴이 피어올랐다가 사라진다. 다시 피어오른다.

오늘도 한 숟가락 떠먹는다.

맷돌에 갈린 쌀알처럼 부서진 마음이 목을 따라 부드럽게 넘어간다. 쓰지도 달지도 않은, 그저 따뜻한 맛.

나는 안다.

내일도 다시 진죽을 끓이게 되리라는 걸.

언젠가 더 이상 네 얼굴이 떠오르지 않을 때까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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