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밖에서 서성이던 그가 내가 있는 베란다로 들어와 담배를 권했다. 나는 괜찮다며 손짓으로 사양하고, 발코니 난간에 기대어 빈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차갑지만 시원한 2월의 마지막 밤공기가 그의 남색 점퍼를 스쳐 내 볼에 닿았다. 어딘가 젖은 먼지 냄새가 희미하게 섞여 있었다. 말하지 않아도 외롭지 않은 밤이었다. 아니, 말하지 않았기에 덜 쓸쓸했던 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게 우리의 첫 만남이다.
그는 국제법을 전공한다고 했다. 그러나 수업 대신 여행을 떠나는 날이 더 많았다. 돌아올 때면 그의 가방 안에 여행지에서 산 기념품보다 직접 주워 온 돌들이 더 많이 들어 있었다.
그는 지질학을 공부하고 싶어 했다. 기숙사 방에는 법률서 대신 자연 관련 서적들이 가득했고, 책상 위에는 정체 모를 암석들이 흩어져 있었다. 창가에는 연필로 동그라미 쳐진 지도 한 장이 붙어 있었다.
한 번씩 그는 무의미해 보이는 돌이나 흙을 내게 건네며 눈을 반짝였다. 그런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그는 속물이라 했다. 자연을 사랑하지 않는 인간은 유죄라고 말하던 그는, 내 눈에는 철없는 아이처럼 보였다.
천쯔린엔, 그의 이름이다. 그는 말레이시아 화교였고 우리는 베이징에서 만났다. 그는 그의 동생 쯔민과 함께 이곳에 유학을 왔고, 쯔민은 다른 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했다.
둘은 형제라고 하기에는 크게 닮은 구석이 없었다. 쯔리엔이 둥글고 순한 인상이라면, 쯔민은 깊은 눈매가 먼저 눈에 들어오는 얼굴이다.
쯔민이 어느 날 그림 모델이 필요하다며 부탁한 것이 우리가 가까워진 계기가 되었다. 그날 나는 긴 머리를 풀어 얼굴을 가린 채 책상 위에 엎드려 포즈를 취했다. 창밖으로 먼지 섞인 햇빛이 천천히 흘러들었고, 연필 긁히는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그들은 웃었고, 나도 따라 웃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자주 함께 했다.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여행을 갔다.
그렇게 반년이 흘렀다.
여름방학이 다가오던 어느 날, 쯔리엔이 항공권을 내밀며 자신의 집에서 함께 지내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렇게 나는 쿠알라룸푸르, 그들의 집에 도착했다.
쯔리엔과 쯔민의 집은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산 아래로 식당들이 줄지어 선 산책로 한편에 자리한 곳으로, 그 앞에는 강이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저녁이면 가로등 불빛 사이로 향신료 냄새가 얇게 번졌고, 아이들 웃음소리가 물수제비처럼 튕겨 올랐다
1층은 식당, 2층은 직원들이 생활하는 공간이었다.
식당 뒤편으로 이어지는 잔디를 따라가면, 별채가 나왔고 별채에 딸린 수영장 물 위에 반사된 빛이 벽면을 흔들며 일렁이는곳, 그 곳이 쯔리엔 가족이 지내는 공간이었다.
공항으로 마중 나온 사람도 기사 아저씨였다. 검은 세단이 미끄러지듯 멈춰 섰을때 나는 말없이 차 문을 바라보며 두 사람이 가족이 ‘작은 식당을 한다’고 말했던 것이 겸손한 표현이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괜히 가방끈을 한 번 더 고쳐 잡았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그 여름이 나를 이렇게 바꿔놓을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