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서의 하루
준서의 하루
-아니
-그냥
엄마의 텅 빈 눈을 읽었다. 그 순간 묘한 승리감이 스쳤다.
엄마의 질문에 대한 내 대답은 오래전부터 이 두 말을 벗어나지 않는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하지만 섬광처럼 흔들리는 눈빛을 나는 놓치지 않는다.
나는 생각보다 눈치가 빠른 사람이다.
스네일 야구단을 만들어보라 권한 건 엄마다.
내가 친구들과 야구단을 만든 건 말하지 않았지만, 야구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나서야 엄마는 알았다.
- 야구하는구나? 재미있어?
-그냥.
‘그냥’은 ‘아니’라고 말하지 못할 때 쓰는 말이다.
더 묻지 말라는 뜻이기도 하다.
눈치 없는 엄마는 그걸 모르는지 자꾸만 물어본다.
하긴, 두 달이 지나도록 내가 야구를 시작한 줄도 몰랐으니.
확실히 나는 엄마 유전자는 아닌 것 같다.
엄마와 아빠는 삼 년 전에 이혼했다.
이혼을 원하지 않았던 아빠의 마음도, 그 후로 이어진 재결합의 의사도 엄마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빠는 늘 바빴다.
어릴 적 행사 사진 속 아빠의 얼굴은 몇 장 되지 않는다.
놀이공원도, 박물관도, 인형극도 늘 엄마와 둘이었다.
그래서 이혼이 새삼스럽지는 않았다.
우리는 원래 둘이었으니까.
- 응~~ 알았어요.
전화기를 들고 있는 엄마의 목소리가 ‘솔’까지 올라간다.
사랑과 재채기는 숨길 수 없다더니.
요즘 엄마는 연애를 한다. 남자친구의 전화를 받을 때면 목소리도, 표정도, 심지어 발소리까지 달라진다.
굳이 숨기려 하지도 않는다.
-너도 여자친구 생기면 엄마한테 제일 먼저 알려줘.
그 말을 하던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 없다.
나를 지키던 단단한 방어벽 하나가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내 불안은 거기서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바닥에 떨어진 머리카락을 보고 알았다.
내 손이 자꾸 머리로 간다는 걸.
아직은 엄마조차 모를 만큼의 크기.
그래서 딱 그만큼 서운한 마음의 크기.
그날 저녁, 엄마는 유난히 말이 많았다.
전화를 끊고도 묵묵히 밥을 먹는 내 앞에서 계속 말을 건넸다.
무슨 말을 꺼내려는지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엄마가 먼저 말할 때까지 기다릴 생각이었다.
-결정했어? 네가 싫으면 억지로는 엄마도 싫다.
몇 주 전, 아저씨를 만나보겠냐고 물어왔다.
이전엔 바로 싫다고 했다.이번엔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
그 한마디가 엄마를 기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아니.
짧고 건조하게 말했다.
엄마는 작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 척, 쿨한 척 눈빛을 감췄다.
나한테는 다 들킨다는 걸 알면서도.
사실은 만나볼 생각도 했다. 나는 이제 어린아이가 아니다.
엄마를 한 사람으로 인정해 보자고, 그렇게 마음먹은 적도 있다.
할머니도 말씀하셨다
아빠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건 엄마와 결혼한 일이라고.
아빠는 할아버지를 닮아 밖으로 돌았고, 할머니는 평생 참고 살았다고. 엄마만큼은 그렇게 살지 않길 바란다고.
엄마랑 네일을 함께 받고 돌아온 할머니가 매운 낙지찜에 소주를 기울이며 늘어놓은 이야기였다.
요즘 두 사람은 완전히 베프가 되었다
그날, 거실장 구석에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나와 아빠가 함께 찍은 사진.
그 안의 나는 아빠를 꼭 닮아 있었다.
-내 옆에 멋진 어른 한 명 두고 싶어. 너한테도.
엄마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그때는 잠시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생각해 보겠다고 했던 건데. 조명 아래 흔들리던 엄마의 눈빛을 본 순간, 괜한 말을 했다는 걸 알았다.
그리고 내가 또다시 머리를 뜯고 있을 때, 엄마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 준서야, 아저씨가 그러시더라. 너 머리 뜯는 거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니까 일단 모른 척하래. 관심을 줄수록 더 심해질 수도 있다고. 네가 편해질 방법을 같이 찾아보자고 하셨어.
그리고 말을 이었다
- 아저씨를 보고 나면 네가 조금은 안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두려워서 열어보지 못한 상자일 수도 있잖아.
나는 그 사람이 너에게도 선물이길 매일 기도해.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머리를 뜯고 있던 손도 함께
엄마의 기도 속에 내가 있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마음을 더 어지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