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우의 하루
울고 또 울었다. 소리 없는 눈물이 뚝뚝 흘렀다. 들리지 않으니 더 많이 흘려야 할 것 같았다. 내 몸 안에 이렇게 많은 물이 있었나 싶을 만큼 울고 또 울었다.
종이를 동글동글 굴려 공을 만들며 아이들 소리가 들리는 별관 쪽 공터로 향했다. 준서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싶지는 않았다. 다만 매일 학교에서 뭐 했는지 꼬치꼬치 묻는 엄마에게 건네는 거짓말이 지겨웠다. 내가 혼자 조용히 지내는 것이 왜 엄마에게 그렇게 불안이 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돌덩이처럼 무거운 발을 끌며 별관으로 천천히 걸었다.
“흥흥, 지우다.”
현웅이가 나를 발견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냥 뒤돌아가 버렸을 것이다.
높은 건물 지붕에 가려 조각난 가을 하늘의 푸르름이 공터에 비스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 준서가 웃고 있었다. 걸음을 멈춘 건 준서의 그 환한 웃음 때문이었다.
“야, 뭐 하냐! 빨리 와서 응원해!”
멀리 3루 근처에서 손을 흔들며 준서가 소리쳤다.
인공와우를 단 지 여섯 달. 그렇게 거부했던 이 장치를 통해서 준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문득 고마웠다. 기계음이 섞인 소리가 아닌, 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준서의 목소리는 어떤 소리일까. 궁금해졌다.
나는 두 해 전 사고로 소리를 잃었다. 사람들은 모두 그날을 ‘내가 청력을 잃은 날’로 기억한다. 하지만 내게 그날은 ‘구름이를 잃은 날’이다. 소리를 잃은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부모님은 언제나처럼 일에 매달렸다. 테이블 다섯, 여섯 개 놓인 작은 순두부 가게가 맛집으로 이름나자, 집에 있던 엄마도 가게에 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늘 혼자였다. 영어 유치원, 미술 학원, 바이올린 수업…. 집에 오면 엄마가 정해 준 영어책과 CD를 다 들어야만 잠들 수 있었다.
어린 내 달팽이관은 엄마 아빠 목소리보다 외국어에 더 익숙해 있었다. 그런 달팽이관이 고장 난 것이 내겐 그리 특별한 일도 아니었다. 그때 내 옆에 구름이가 없었다면, 나는 스스로 고요에 갇혔을지도 모른다. 구름이를 잃었다는 건, 내 전부를 잃었다는 뜻이었다.
“구름아, 안 돼!”
어디서 옮았는지 구름이 목에 부스럼이 생겼다. 간지럽다고 긁어대서 목줄을 채우지 않은 걸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천변을 따라 구름이를 안고 걷던 어느 날, 구름이가 갑자기 도로 아래로 뛰어들었다. 노란 나비를 따라간 걸까. 나도 망설일 틈 없이 뛰어들었다. 그날, 구름이를 잃었다. 사람들이 말하는 바로 그 ‘내가 청각을 잃은 날’이기도 하다.
후천적 청력 손상은 인공와우로 생활할 수 있다는 말을 들은 부모님은 더 열심히 돈을 벌어야했다. 그래서 나는 또 혼자가 되었다.
“붕신… 공을 보고 치라고.”
나를 향해 준서가 툭 던진 말이다. 한번씩 준서의 거친 입버릇은 솔직히 싫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내가 귀가 다쳤다는 걸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 그냥 툭 내뱉는 그 말이 좋았다.
헛스윙 몇 번 끝에 간신히 맞힌 공은 뒷담 근처에 떨어졌다.
‘스네일 야구단 규칙 — 자신이 낸 파울공은 스스로 주워 온다.’
준서가 만든 규칙이지만, 내가 파울을 낼 때마다 준서는 늘 성큼성큼 먼저 달려가 공을 주워 왔다. 준서는 그런 아이다
구름이와 매일 걷던 그 천변길, 구름이가 떠난 뒤 단 한 번도 가지 않은 그 길을 준서와 함께라면 다시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