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3 한국말하는 태국인
나는 한국말하는 태국인이다.
언제부터인가 내 사고방식, 생활 방식, 말하는 스타일 모두 태국인처럼 변해버렸다.
결혼 후 남편과 태국에서 신혼을 시작했을 때 너무 많이 싸웠다. 남편은 한국말하는 태국인이었다.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 고3 때 태국에 온 남편은 모든 생각이 한국적이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태국에서 한 사함이라서 너무도 달랐다. 그런데 지금 내 모습이 그렇게 되었다. 그래서 남편과 더 이상 다투지 않는다. 왜냐하면 나도 태국에 살면서 태국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하게 되어 버렸으니까...
하지만 일부 모습은 한국인이기도 하다. 학창 시절, 사회생활을 한국에서 한 것도 있으니까..
가끔씩 한국에 가면 어떤 상황에서는 어떻게 대처해야 좋을지 모를 때가 있다. 마치 한국이 외국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요즘 MZ들의 모습이 낯설게도 느껴지고. 그래서 딸이나 아들들한테 물어보기도 한다. 이게 요즘 트렌드냐고.
나는 중고등학교 시절 남 웃기기 좋아하고 애들하고 재밌는 얘기 하기 좋아하던 아이였다. 아마도 지금의 내 모습을 보면 중고등학교 친구들은 내가 많이 소심하고 계획적인 성격으로 변했다고 느낄 것이다. 실제로 중학교 친구 한 명은 나보고 MBTI 성향 중 완전 T에 J라고 했다. 그렇게 된 것에는 태국에서 오래 산 영향이 분명히 있고 어른들과 함께 살았던(시집살이) 영향도 있었다.
태국에 잘 적응해서 살기 위해서는 태국인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해야 적응하기 편하고 그래야지만 살아가는 데 스트레스가 생기지 않는다.
태국은 절대 '빨리빨리'가 통하지 않는다. 되려 빨리빨리 재촉할수록 일이 더 느려진다. 바로 태국인의 자존심 때문이다. 태국인들은 남의 통제에 지배당하는 걸 좋아하지 않고 좋은 말로 대화하지 않으면 잘 따르지 않는다. 즉 아무리 맞는 말을 해도 화내거나 흥분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어하고 그런 사람을 요주의 인물로 생각하고 기억해 둔다.(내가 20년 이상 살면서 느낀 태국인은 뒤끝 작렬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외국인이라서 태국에 합법적으로 거주하기 위해서는 비자가 있어야 한다. 물론 관광객인 경우는 3개월 무 비자로 관계없지만 거주인인 경우는 꼭 필요하다. 나는 남편이 Work Permit(노동 허가증)이 있어서 합법적으로 거주할 수 있어서 문제가 없지만 비자는 1년 혹은 2년마다 갱신해야 한다. 그때 필요한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데 이민국 직원이 요청하는 서류가 있다. 준비하라는 서류를 제출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간혹 이민국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는 한국인을 볼 때가 있었다. 서류를 제출했는데 또 다른 서류를 요청하는 경우다. 그럴 때는 알겠다고 공손히 얘기하고 서류를 준비하면 되는데 처음과 말이 다르지 않느냐는 둥 이 서류는 왜 제출해야 하냐는 둥 이민국 직원의 심기를 건드리는 경우에는 그 사람은 한마디로 찍히게 되는 것이다. 아마도 매번 비자할 때마다 요청하는 서류가 다른 사람보다 많을 것이고 비자 발급 시간도 오래 걸릴 것이다. 즉 태국에서 공무원 심기는 웬만해서는 건드리지 않는 것이 상책이고 그건 태국 일반인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같은 외국인이라면 경찰, 공무원, 은행직원 등등 우리가 업무상 필요한 곳에서는 감정을 표출하지 말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따르는 것이 신상에 좋다. 그러다 보니 나처럼 태국에서 오래 지낸 한국인들은 보통 조용하고 크게 소리 내지 않고 태국인들 무리에 있어도 별로 티 내지 않고 지내는 편이다.
"로마에 오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했다. 이 말을 잘 새겨들으면 내 말 뜻을 이해할 것이다.
여기는 외국이다. 한국이 아니란 말이다. 그런데 한국에서처럼 행동하면 태국인들을 기분 상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럼 어떤 사람은 내가 여행으로 왔는데 내 맘대로 못하냐고 말할 수도 있겠다. 태국인들은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일단은 참는다. 하지만 계속 예의 없게 행동하거나 시끄럽게 시시비비를 따지면 싸우자는 뜻으로 알고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
태국을 여행 온 한국 관광객들의 무례한 실수나 행동이 여기 태국에 거주하는 교민들에게 안 졸은 영향이 있음을 꼭 알아줬으면 한다. 예전에 한국을 놀러 간 태국 관광객이 입국이 안 된 적이 있었다. 태국 노동자들 중에 불법으로 한국에 취업한 일들이 종종 있다 보니 출입국 심사 때 문제를 삼은 것이었다. 그 일이 있은 후 태국에 있는 한국 상가에서 갑자기 경찰이 닥쳐서 한국인 여권을 조사하고 여권을 소지하지 않은 사람은 경찰서로 잡아간 적도 있었다. 이것은 외교적인 문제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되도록 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해야 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한국의 문화와 태국의 문화가 너무도 다르기 때문에 나는 한국에 가게 되면 성격적으로 모드(mode) 전환을 한다. 한국에 가면 왠지 심적으로 좀 더 편하고 덜 조심스러워진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그래도 한국에서는 많이 편안하고 압박감이 덜 하긴 하다.
내가 한국에서 적응하기 어려운 점은 코로나 이후로 키오스크 같은 비대면 상황을 마주 할 때이다.
오랜만에 한글 자판을 보면 매번 영어, 태국어로 보다가 좀 익숙하지가 않아서 헷갈릴 때가 있다. 물론 내가 나이가 중년이기도 핵서 빠르게 처리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오랜만에 기기에 있는 한글을 접하면 간혹 헷갈리기도 하다. 예를 들면, 은행에서 ATM기기에 '인출'이란 말보다는 withdrawal이 더 익숙하다.
한 번은 은행을 가서 상담을 하는데 직원이 말을 너무 빨리 하기도 하고 은행 용어를 쓰는데 자주 안 들어보던 말들을 하니까 확실히 외국에서 온 교포임을 티 내서 천천히 말해달라고 했고 모르는 용어는 자세히 설명해 달라고 했었다.

한국에 거주하면 항상 이용하는 관공서, 은행, 마트 같은 곳이 그곳에서만 쓰는 용어, 방식, 방법 등이 있는데 어쩌다 한국에 잠시 왔다 가는 나와 같은 교민이나 교포에게는 가끔씩은 어려운 미션일 수가 있는 것이다.
친구랑 약속을 하고 식당을 찾는 것도 카카오 맵을 이용 해 길 찾기를 하는데 물론 모두 한글로 적혀 있어도 매번 가는 곳이 아니면 길을 헤맬 수도 있고 전철이나 버스를 타는 것도 어플을 깔아서 미리 검색해 보고 가야 한다.
처음에는 익숙지 않다가 그나마 2-3일 정도 지나면 예전 감각이 살아나서 길도 잘 찾아가고 어떻게 대처하는지도 알 수 있게 된다.
남편은 한국에 1주일 이상 길게 머물지 못하기 때문에 한국에 오면 항상 내가 길을 안내해 주고 같이 다녀줘야 한다. 왜냐하면 한국 생활이 익숙해질 때면 다시 태국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에서 생활을 한다면 충분한 적응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한국에 머물면 거의 1달 정도 머물면서 주위 환경도 익히고 잘 모를 때는 아이들에게 물어보고는 한다.
한 번은 마트에 가서 장을 보는데 한국 물가에 대한 감이 없어서 물건이 비싼지 싼 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것은 한국에 오래 살아야 기본 가격을 알 텐데 그러질 못하니까 처음에는 애들한테 비싸게 주고 사 왔다는 말도 듣곤 했다.
병원을 갈 때도 접수할 때 다른 사람이 말하는 걸 보고 따라 하기도 하곤 했다. 물론 한국말로 물어보면 되지만 너무 기본적인 걸 물으면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생각도 들고 어떨 때는 외국에 살아서 치료받기 위해 한국에 나왔다는 말로 설명이 필요한 경우도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한국에서 생활하기 위한 적응 단계인 것이다.
단순히 좋은 곳을 구경하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고 하면 그건 관광인 것이지 실제로 산다는 것은 또 다른 일이었다. 20년 이상 한국에 대한 지식, 정보가 업데이트되지 않은 것을 새로 수용하고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했다.
한국에서 살면 노후도 어떻게 지낼지 생각해야 한다. 차근차근 준비하면서 한국말하는 한국인으로 한국 문화, 분위기에 익숙해지도록 노력해 보겠다. 잘 해낼 것이다.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