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살기 프로젝트 A to Z

Ep. 7 두 나라 한 가족

by sommeil


아이들은 한국에 살고 남편과 나는 태국에 살면서

언제 우리는 한 하늘 아래에서 같이 살게 될까 생각해 보았다.


2017년 첫째 딸이 한국으로 대학을 가면서 우리는 두 집 살림을 하게 되었다.

(엄격히 말하면 세 집(?!) 일 수도 있다. 남편이 지방에 근무해서 주말부부니까)

처음에 딸은 서울의 시어머니집에서 대학 시절을 보냈다.

워낙 착하고 순한 아이라서 할머니 말씀도 잘 듣고 나름 대학생활도 잘 보내고 있었다.

대학만 보내놨지 입학 때도 할머니랑 고모가 대신 가줬고 당시 나는 일도 많이 하고

비용면에서도 딸만 보낼 상황이었다.




해외에서 아이들 셋을 교육시킨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나와 남편은 취미생활 없이 애들만 열심히 키웠다. 첫째를 처음 한국으로 대학을 보내는 거라서 신경도 많이 써줬고 사교육도 여유 있게는 아니지만 학원도 보내주고 했었다.


다행히 대학에 합격했고 학교를 다니는 동안 첫째는 대학 생활, 한국 생활에 적응하느라 맘고생이 심했다.

더군다나 엄마가 아닌 할머니랑 단 둘이 지내느라 어려움이 만만치 않았다. 원래 말이 많던 아이는 아니었는데

그 당시 할머니와 동거하는 게 쉽지는 않아 보였다. 세대 갈등도 있었지만 아무리 할머니가 잘해주셔도 엄마가 해주는 것과는 너무도 다르다고 딸이 말했었다. 주위에서 가족들이 외식을 나오면 자기만 할머니랑 밥을 먹는다고 마음이 헛헛함을 전화로 표현한 적이 있었다. 게다가 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 문화나 생활을 전혀 모르고 할머니와의 동거가 시작됐으니 그때 딸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간다.


내가 전화하는 것보다 딸이 내게 전화하는 횟수가 더 많았으니까.

별일도 아닌데 딸은 전화해서 지금 무슨 역이다. 전철 내려서 집으로 걸어가는 중이다. 거의 다 왔다는 식으로 실시간 생중계하듯이 전화했었다.

그때는 딸이 방콕에서도 속 썩이지 않고 잘 지내서 한국에 가서도 그냥 잘 지내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할머니와 6년을 살고 남동생들과 함께 작년에 분가했다.

분가할 당시 딸은 너무 좋아했고 난 아들들보다 딸이 원하는 걸 꼭 해주고 싶어서 침대, 화장대를 살 때도 제일 이쁘고 맘에 드는 걸로 고르라고 했다. 나중에 첫째 방에 놓인 침대, 화장대 같은 가구들을 보니 내 기분이 너무 기쁘고 좋았다. 그동안 맘에 안 들어도 할머니 원하는 대로, 할머니 스타일 대로 살아온 딸에게 미안한 마음을 대신 그렇게 표현하게 되었다.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으로 열심히 일하고 있는 딸이 대견하기만 하다.


좀 전에도 오랜만에 딸과 통화를 했는데 할머니에게도 전화했다고 말했다. 첫째라서 그런지 할머니께 가끔 용돈도 드리고 동생들이 좀 다툴 때면 내게 은근슬쩍 알려주기도 하고 우리 딸은 참 잘 자랐다.

그래서 너무 고맙다.


sticker sticker


나도 그렇지만 남편도 딸도 아들들도 겉으로 표현을 많이 안 한다.

아무리 서운해도 아무리 보고 싶어도 말하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제 삶을 충실히 살아가고 있다.

가끔씩 막내아들이 딸보다 더 딸같이 전화도 자주 하고 형하고 다툰 얘기도 시시콜콜히 하기도 하고

어버이날이면 애정표현도 제일 많이 한다. 사랑한다는 카톡에, 다양한 이모티콘으로 감성 끝판왕이다.

유일하게 우리 가족 중에서 막내가 분위기 메이커이면서 가장 감성적이다. 가끔 말이 너무 많아서 귀가 뜨거울 정도로 통화할 때도 있지만 그만큼 엄마, 아빠 신경도 가장 많이 쓰는 귀여운 녀석이다.




멀리 있어서 더 애틋한 것인지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상처 주는 말을 되도록 안 하고 좋은 말들만 하려고 애쓰는 것이 내 눈에 보인다. 이제 곧 1달 후면 한국에 간다. 아이들 만나러.

설레고 좋고 또 좋다.

그동안 방콕에서 보낸 시간이 아깝지 않다. 곧 아이들을 볼 수 있으니까.


가까운 미래에 곧, 몇 년 후가 될지 몰라도 우리 가족이 한국이란 한 하늘 아래서 같이 살 날이 오겠지.

같은 집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언제든 가서 만날 수 있는 같은 하늘아래 한 나라 한 가족이 되는

그날을 꿈꾸면서 이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