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6시 30분 핫요가를 마치고 집으로 향했다.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 갖고 다니는 작은 우산을 펼치고 빠른 걸음으로 프럼퐁역으로 향했다.
5분 정도를 걷다가 프럼퐁역 가까이에 있는 엠콰티어 백화점 바로 앞 골목에서 갑자기 미끄러졌다.
앗! 순식간이었다.
바닥이 미끄러웠는지 내 운동화가 미끄러웠는지 왼쪽 다리가 무릎에서 바깥쪽으로 꺾였다.
순간 잠시 멈춰 앉아 있었지만 오른 다리로 지탱하며 벌떡 일어섰다.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주변 사람들은 전혀 신경을 안 쓰는 것 같았다.
나 역시 창피하기도 해서 바로 일어서서 절뚝거리며 프럼퐁역으로 걸어가서 지상철을 탔다.
좀 걷다 보니 조금 아프긴 해도 괜찮은 거 같아서 온눗역 로터스라는 대형 슈퍼마켓에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집에 돌아왔다. 그때까지는 하루 자고 나면 괜찮아질 줄 알았다.
다음 날 아침이 되었다.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왼쪽 다리가 구부려지지 않았다.
순간 매우 당황스러웠다. 어떡하지?
나는 남편에게 톡으로 상황 설명을 했다. 남편은 바로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집에서 병원까지는 거리가 꽤 멀었다. 나는 Bolt(볼트: 한국의 카카오 택시 같은 방콕 택시 어플)를 불렀다.
행선지는 통로에 있는 사미티벳 병원이었다. 그래도 콜택시가 집 앞에 오니 다행이었다.
병원에 도착해서 아픈 다리로 겨우 겨우 내렸다.
병원 카운터로 가서 등록을 해야 했다. 내가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으니 병원 직원이 휠체어를 가져오고 있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사실 괜찮지 않았지만 병원비 폭탄을 맞을 까봐 거부했다. 태국은 의사 면담비 외에
기구 이용비나 서비스 이용료가 꽤 많이 붙는 편이었다.)
나는 등록을 마치고 겨우 정형외과로 찾아가 의사를 만났다. 그는 아픈 내 왼쪽 무릎을 만졌다.
나는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의사의 권유로 엑스레이를 찍었다. 결과가 나왔다.
왼쪽 내측 인대가 파열됐다고 물리치료를 받고 보조기를 차야 한다고 했다.
오! 마이 갓!
잠시 뒤 보조기를 어느 간호사가 들고 오더니 내 왼쪽 다리에 채워주었다.
그러더니 다른 층에 있는 물리치료실로 안내를 하고 물리치료사가 내 왼쪽 무릎에 냉찜질을 해 주었다.
나는 아픈 것보다 병원비가 더 걱정되었다.
도대체 병원비가 얼마나 나올까.
이따 집에는 또 어떻게 가야 하나...
치료를 마치고 병원 지하에 있는 택시 스탠드에서 병원 주차요원이 택시를 잡아주고 있었다.
순서를 기다리고 나서 내 차례가 되어 택시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나는 보조기를 찬 채로 느릿느릿 걸음을 걸으며 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에 들어왔다.
가방과 바르는 약 등을 소파에 놓고 병원비 영수증을 보았다.
8천 바트 넘게 병원비가 나왔다.(한화로 35만 원 정도로 X-Ray, 물리치료비, 의사 면담비, 약값, 그 외 부수비 등등)
의사가 보조기를 6주 정도 차야 한다고 했고 6주 뒤에 다시 오라는 예약 종이를 주었다.
틈틈이 병원에 와서 물리치료를 받으라고 했는데 엄두가 나지 않아서 물리치료는 가지 않았다.
바르는 약을 보고 약국에서 같은 브랜드로 약을 사서 다친 부분을 발랐고 냉찜질 팩을 사서 수시로 왼쪽 무릎 주변을 마사지해 주었다.
사람 일은 모른다더니 결국 잠시 요가를 쉬라는 신호로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6주간 요가는 할 수 없이 쉬게 되었고 주말이면 남편과 이동할 때 지상철을 타면 계단을 걸을 수가 없어서 어르신들처럼 엘리베이터를 탔다. 식사를 할 때면 나는 앉아 있고 남편이 서빙을 해줬고 다행히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탈 때면 굉장히 편안함을 느꼈다. 때 아닌 공주 대접을 받는 호사를 누렸다.
요가 클래스는 정해진 기간이 있어서 내가 다친 것을 증빙하는 진단서를 제출하면 기간을 연장할 수 있었다.
남편과 함께 진단서를 제출하러 스튜디오에 들렀다. 보조기를 찬 갑작스러운 내 모습에 스튜디오 직원들은 눈이 동그래졌지만 놀란 기색은 애써 보이지 않았다.
나는 병원에서 떼 준 진단서를 제출하고 운동 기간을
6주 후로 연장했다. 그나마 나중이라도 요가를 계속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많은 생각이 들었다.
왜 다치게 됐는지. 신발 때문인지 빗길 때문인지 나의 빠른 걸음 때문인지..
이미 일은 벌어졌고 이유보다는 수습이 중요했다.
나는 그때 다친 이후로 걸음이 예전보다 느려졌고 상대적으로 걸음이 느린 남편을 채근하던 버릇도 자연스레
없어졌다. 잠시 쉬라는 신의 계시로 알고 운동도 멈추었고 외출도 자제했다.
더운 나라에서 보조기를 차고 집에만 있으니 매우 답답했지만 이럴수록 마음을 굳게 먹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이 또한 지나가리라.
십자인대가 다쳤으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의사 말대로 이만하길 다행이다 생각했다.
6주가 지났다.
보조기를 풀었고 의사를 다시 찾아가 조금씩 운동을 시작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
기쁜 마음으로 요가 스튜디오를 다시 찾았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였지만 여전히 왼쪽 무릎 안쪽이 조금 아픈 상태였다.
요가를 시작하기 전, 어느 요가 강사든 꼭 묻는 말이 있다.
" 처음 요가하시는 분 있나요? 어디 아프신 분은요? "
나는 손을 들고 왼쪽 무릎을 가리켰다. 강사는 바로 알아듣고 너무 무리한 동작은 따라 하지 말라고 했다.
그때부터 모든 동작에서 불완전한 자세를 취했다.
왼쪽 다리를 쓰는 동작이면 어린이 자세를 하고 쉬어야만 했다.
거의 6개월 가까이 정상적인 동작이 어려웠고 그럴수록 나의 요가에 대한 열정은 더 불타올랐다.
나는 완전히 완치하기까지 꾸준히 요가를 다녔고 거의 9개월 정도가 되니 90% 정도는 완치가 되고
요가 동작도 거의 다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때부터 다리의 소중함, 건강에 대한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일도 가족도 아닌 내 건강이 모든 것의 1순위다.
앞으로 열심히 운동해서 더 건강해지겠다고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