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

by 라원

동기들의 졸업식에 다녀오고 본가에 내려가는 기차 안이다.

조용히 혼자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글을 끄적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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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많이 고민했다.

동기들의 졸업식을 갈지 말지.


고민은 이거였다.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지'

'학교 나온 걸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지'


그냥 두려웠다.

나도 모르는 못난 내 모습을 마주하기 싫었다.


전날 밤에 결정했다.

누군가가 그럴 거면 가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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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은 14시에 시작했다.

근데 좀 늦어서 14시 40분쯤 도착했는데..

퇴교한 동기들을 먼저 만났다.


다들 많은 걸 이뤘더라.

좋은 대학, 새로운 삶, 더 넓어진 시야 등등


정작 학교 다닐 땐 많은 대화를 나누지 않았던 친구들임에도

정말 반갑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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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때, 2학년 때, 3학년 때.

재교생으로서 세 번의 졸업식을 겪으며,

정말 안 올 것 같던 82기의 졸업식을 눈앞에서 보게 됐다.

이젠 생도 정복이 아닌 장교 정복을 입고 있었다.

다들 너무 멋있었다. 정말 행복해 보였다.

육사는 끝이지만, 새로운 시작이니까 설레 보이기도 했다.


언제 다들 이렇게 멋있어졌는지 모르겠다.

하나같이 훤칠하고 멋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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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학년 견장을 달고 있던 85기 생도들의 벽돌이 깨지며

줄 세 개가 됐다.

진짜 말도 안 되게 어색했다.

3학년 때 한창 교육에 진심이었을 때(?)

많이 교육했던 후배가 있었는데

오늘 마주치자마자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2년 전 오늘 부분대장 생도님께 많이 혼났었는데 제가 지금은 부분대장 하고 있습니다'


느낌이 이상한 것보다도, 이 얘기를 듣는데 내가 육사에서 많이 멀어졌구나 싶기도 했다.

그 당시에 맞다고 생각한 방식이, 지금 보면 말도 안 되는 것들이긴 했다.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그게 맞다고 생각했지만

스스로의 줏대가 조금 더 제대로 박혀 있었다면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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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 했던 걱정들에 대하여.


1.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면 어떡하지


그런 사람과 마주치면 껄끄러울 줄 알았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랜만에 보니까 좋았다. 너무 축하해주고 싶었다.

있는 마음 전부 다 내서 축하해 줬다. 안 좋았던 마음은 기억도 안 났다.

그냥, 앞으로를 응원하게 됐다.


내가 예상한 나의 부정적인 생각은 그냥 생각일 뿐이었다는 걸 느꼈다.

내가 나를 잘 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겼던 오류일 뿐이었다.


사람을 미워할 수 없다.

그냥 그 순간의 감정일 뿐이라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 준다는 걸 느꼈다.



2. 학교 나온 걸 후회하게 되면 어떡하지

사실 분열 보는데 추억에 잠겼다.

생도들은 졸업식 연습을 약 2주 정도 하는데,

그 기간에는 매일 총 들고 팔 휘저으며 걷는 연습(?)과 서있는 연습(?)을 한다.

하급 생도들에게는 좀 힘든 시기지만 상급생도 때는 괜찮다. 나름 재밌기도 하다.

3학년 때는 주머니에 젤리 넣어가서 분대 1학년들 입에 넣어주기도 하고.. 뭐 그렇다.

그때가 생각이 났다.

학기 초에 그 설렘과 새로운 분대를 만나고, 새로운 역할이 주어지는 그 시기.

그런 추억들이 생각났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가 저 자리에 있으면 어떨까'라는 생각도 하게 됐고,

결론적으로는 그리워졌다.


스토리에 졸업식 간 거 올리니까 사람들이 물어봤다.

동기들 졸업식인데 계속 같이할 걸, 나온 거 후회된 적 없냐고.


나와 제삼자의 걱정과는 달리 졸업식 보는데 후회는 없었다.

그냥 아련했을 뿐.


어느 삶이 더 낫다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지금 현재의 내 삶을 즐기며 충실하게 살면 된다는 결론이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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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나왔지만 불안정한 환경에 계속해서 던져지고 있었던 시기였다.

그래서인지 마음은 아직 육사에 있었던 것 같다.


동기들이 졸업하는데 내가 졸업하는 느낌이었고,

뭔가 후련해졌다.


안 갔으면, 마음에서 육사가 계속 있었을 것 같다.

언젠가 내가 크게 꼬꾸라지면, 마음 한편에서 육사에 대한 선택의 순간들이 생각났을 수도 있었을 듯하다.

뭐 물론 단정하진 못하겠지만,

많이 마음이 덜어내 졌다.


나도 오늘 졸업하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