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

by 라원

오늘 권영호 전 학교장님을 만났다.


1학년 말 때 취임하셔서,

퇴교하기 한 달 전인 3학년 5월에 전역하신 3성 장군이시다.



학교장님과의 첫 만남은 1학년 때였다.

과제 제출을 위해 동기들과 영상을 찍고 있었는데,

우리를 보시고는 차에서 내리셔서 같이 사진 찍자고 하셨다.


겉치레로, 보여주기 식으로 찍자는 말씀이 아니었다.

그냥 생도들과 추억을 남기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군대 다녀온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정말 이런 3성 장군님은 뵙기 힘들다.


신기했다. 그때까지도 어떤 분이신지 몰랐다.

확실한 건, 정말 사람들 많이 생각하고, 배려하고, 좋아하는 분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2학년 4월에 샌드허스트 대회를 나갔다.


나가기 전 준비할 때도 학교장님께서 우리 팀에게 엄청난 관심과 지지를 보내주셨다.

덕분에 대회에도 더 집중할 수 있었다.


대회 당일에도 뉴욕까지 오셨다.

(원래는 학교장님은 안 오시는데 같이 가겠다고 하신 거였다.)


학교장님께서는 우리의 일정을 계속 따라다니셨다.

솔직히 그냥 편하게 하고 싶은 거 하시면서 돌아다니셨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을 텐데,

바로 옆에서 우리의 열정을 응원해 주셨다. 정말 진심으로.

그 순간은 같은 팀원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너무 감사하면서도 정말 신선한 충격이었다.



게다가 내가 대회 1일 차가 끝날 때 기절해서 병원에 실려갔는데, 깨어나니 내 옆을 지키고 계셨다.

다른 그 누구도 아니고 학교장님께서 나를 봐주고 계셨다.


내가 기절했다는 사실보다 학교장님께서 내가 깰 때까지 옆에 계셨던 게 더 신기했다.

당시 내 얼굴 말이 아니어서 가림


나도 미친놈인 게,

저 때 학교장님 뵙고 제일 처음 드린 말씀이

영국 몇 등 했냐고 여쭤본 거다.


ㅋㅋㅋㅋㅋ 학교장님께서도 충격받으셨는지 아직까지 그 말을 기억하고 계셨다.


뭐 어쨌든.

'별 세 개까지 다셨으면 ~하실 것이다'라는 내 편견을 깨 주셨다.

학교장님 이임/전역식에서도 도열 중 같이 사진 찍자고 해주셨다.


학교에서 마지막으로 같이 찍은 사진이다.

사실 저 사진 찍고 방에 들어가서 울었다.

동기들 퇴교한다고 할 때도 안 우는데, 왜 울었을까

그냥 내가 바라보고 동경하던 분께서 군대를 떠나시는 게 아쉬웠던 걸까, 아직도 그 감정이 뭔지 잘 모르겠다.


학교장님께서 전역하시고 두 달도 안 된 24년 6월 말에 퇴교했다.

그때도 어떻게 소식을 전해 들으셨는지, 따로 연락이 오셨다.



일개 생도에게 이렇게 하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지위가 높아질수록, 그리고 인간관계가 넓어질수록 더욱 그렇다.

이름 외우는 것조차 쉽지 않다.

그런데 학교장님께서는 많은 생도들의 이름과 얼굴을 외우고 계신다.

진짜 어떻게 그러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생도들과 찍은 사진 밑에 이름을 다 적어두신다. 그리고 두고두고 꺼내 보신다.


군대는 사람을 관리하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그렇게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는 사람들은 이런 노력도 하는구나 싶었지만,


사실은 직업 정신보다는 그냥 좋아서 하시는 거였다.

그냥 사람이 좋다고 하셨다.


산티아고에 있을 때였다.

걸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연락을 드렸다.

나중에 귀국하고 여유 있을 때 연락하라고 하셨는데,

귀국하고 거의 두 달이 되었지만 용기가 안 나서 연락 못 드렸다.


그러다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연락드렸다.

밥 사달라고.


그래서 뵙게 되었다.



여기까지가 추억 회상이었고...

오늘 느꼈던 것들을 적어보자면



1. 여전히 그는 정말 닮고 싶은 사람이다.

군인일 때는 저분 같은 올곧고 멋진 군인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나도 저렇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고 싶어 졌다.


위 카톡 대화 내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지금은 봉사활동을 하고 다닌다고 하신다.

보통은 다들 전역하시고 방산업체 들어가시는 것과는 다른 선택이다.


왜 그렇게 하시냐고 여쭤봤다.

자신을 보면서 저 사람처럼 되어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그런 사람들에게 사회를 위해 살아가는 길도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말씀하셨다.


정말 말로만 듣던 '선한 영향력'을 몸소 실천하시는 분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정말 진심으로 그렇게 살고 싶다. 베풀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리고 사회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받은 그 이상으로 주고 싶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나아가며 발전해야겠다.



2. 끊임없이 배우신다.

갑자기 책 읽는 것도 좋아하냐고, 어떤 책 좋아하냐고 하셔서 자기 계발서 주로 읽는다고 답변드렸다.

그리고 학교장님께서는 어떤 책 좋아하시냐고 여쭤보니,

책보다는 전쟁, 무기, 안보 관련한 책들을 읽으시며 '공부'한다고 하셨다.


정말 관심이 가서 읽으시는 것도 있겠지만, 지금의 석좌교수직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기 위해 끊임없이 배워야 하고 새로운 견해들을 탐구해야 한다고 하신다.


멋지다. 한 곳에 그렇게 오래 몸 담고 계셨기에 본래 알고 있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끊임없이 새로운 견해들을 탐구하고 받아들이신다.



3. 그래서 굉장히 열려있으시다.

생도생활을 할 때도 느꼈던 점이다.

살다 보면 기존의 정답들이 정답이 아닐 수 있다.

몸 담아 온 세월이 있기에 그 평균치에서 벗어나는 이상치를 지워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지 않으신다. 오히려 그 이상치를 더 깊이 있게 탐구하신다.


생도들이 하는 말에도 굉장히 열려있으셨다.

그 흔한 '네가 뭘 알아'라는 마인드? 전혀 없으셨다.

오히려 루키들의 새로운 시각에서 기존에는 없던 필요한 점들을 찾아내신다.


오늘도 확신했다.

내가 자리를 끝내며 오늘 너무 영광이었다고 말씀드렸다.


그러니 학교장님께서 하신 말씀은

"젊은 사람을 만나면 항상 나이 든 사람이 영광인 거야"였다.

그래서 나는 제가 배우고 얻어가는 것들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그렇게 생각하시냐고 되물었다.


학교장님께서는 대답하셨다.

"나는 이제 방향이 정해져 있지만, 너 같은 젊은 애들은 뭘 하든 무궁무진하잖아.

그건 내가 할 수 없거든. 그래서 넌 나한테 에너지를 줘"


한 마디 한 마디가 그냥 하시는 말씀이 아니었다.

평소의 생각과 가치관이 묻어 나오는 말씀이었고,

그게 이때까지 행동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 그리고 보통은 육사 자퇴하고 편입이나 다시 수능 보는 게 일반 루트다. 내가 일반적이진 않은 케이스다.

보통 학교장님 연배 분들은 이런 내 성향을 그다지 좋게는 보지 않으신다.

시대라는 특성이 주는 어쩔 수 없는 관념들이라 생각한다.

보통은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할 텐데..' 하신다.


그러나 학교장님께서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는 네가 참 용감하고 멋지다고 하셨다.

나에게 진로와 관련된 어떠한 조언도 하지 않으셨다. 그냥 묵묵히 응원만 해주셨다.


진짜 어떻게 그런 마인드를 가질 수 있지. 나라면 그럴 수 있을까.

정말 신기하고 멋진 사람이다.



4. 단 하나의 조언을 해주셨다. 남과 비교가 아닌 나만의 절대적인 행복을 찾으라고.

나중에 혹시라도 내가 육사 나간 거 후회하지 말고,

남과 비교하지 말고, 지금처럼 잘 살라고.

그러려면 행복의 기준은 내게 있어야 한다고.


내 행복의 기준은 무엇인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됐다.


솔직히 다른 사람이 말했으면 그냥 네네 이러고 넘어갔을 것 같은데,

정말 내 인생의 멘토 같은 분이기에 너무 와닿았고,

조언 -> 실행이 가능한 말씀이었다.




이런 것들 외에도

이것저것 와닿은 것들이 많았다. 서로 약속도 했다.


1.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학교장님께서 봉사하시는 곳에 나도 가기로 했다.

2. 그리고 앞으로 버킷리스트 5개씩 이룰 때마다 이렇게 보자고 하셨다.

내 버킷리스트 100개 이룰 때까지 옆에서 응원하겠다고도 하셨다.



나도 내 분야에서 성공하고,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이보다 더 확실한 동기부여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