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

by 이만희

가만히 창문을 바라본다.

부슬부슬 내리는 가을비 속,

내 영혼은 천천히 젖어 간다.

아물지 않은 상처 위로

누군가의 이름이 스며들고,

절박한 몸부림 속에서

지나온 세월이 부서진 유리 조각처럼 흩어진다.

멀리서 스며드는 찬 바람이

젖은 단풍잎을 흔들며 속삭인다.

그냥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버티고 있는 것이며,

그냥 숨을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견디고 있는 것이라고.

가을비는

내 마음 깊은 틈새를 스며

모든 그리움과 아픔을 잠시 품게 한다.

그리고 나는

젖은 단풍잎 사이로 스며드는 빛 한 줄기처럼

조용히 살아 있음의 의미를 느낀다.

그리고 문득,

이 비가 멈추고 나면

내 안에 남은 것은

그리움도 상처도 아닌

조용한 나의 발자국뿐임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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