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 위에 서고, 글 앞에 앉는다.

by 이만희

삶은 나를 멈추게 하지 않았다. 교단에 선 지 이십 년이 넘는 동안 나는 수많은 아이들과 마주했고, 그들의 웃음과 눈빛 속에서 내 삶을 다시 발견하곤 했다. 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은 가르침의 자리에 머무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에게 말하는 순간에도 나는 배우고, 깨닫고, 다시 스스로를 단련한다. 그렇게 나는 여전히 ‘배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삶의 태도는 단순하다. 할 수 있는 일을 미루지 않고 실천하는 것. 머뭇거리는 순간은 나를 지치게 할 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그대로 전해진다. 교사는 자신의 삶을 통해 더 많은 것을 가르칠 수 있다. 교과서의 글자보다 더 오래 남는 것은 내가 삶을 대하는 태도다. 그래서 나는 뒤돌아보지 않고, 지치더라도 매 순간 최선을 다하려 애쓴다.

그러나 이 결심이 언제나 굳건했던 것은 아니다. 문학 공모전에 수차례 글을 보냈지만 선택받지 못했을 때, 나는 교사로서뿐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도 흔들렸다. “계속 써야 하는가? 글이 나를 어디로 데려가는가?”라는 물음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졌다. 자신감은 꺼져가고, 손끝에서 단어가 흩어졌다.

그럼에도 나는 글로 돌아왔다. 긴 겨울 끝에 봄이 오는 이치를 믿듯이, 언젠가는 내 안에도 다시 꽃이 피리라는 희망 때문이다. 글쓰기는 내게 단순한 취미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세상과 연결되는 방식이자, 고난을 견디는 언어다. 힘겨울 때마다 나는 문장을 필사했고, 타인의 언어 속에서 길을 찾아 나의 언어로 바꾸어 삶에 적용했다. 그렇게 언어는 내게 방패이자 등불이 되어주었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나는 배움이란 ‘부족해야 채워진다’는 순리를 더욱 절감했다.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희망을 배우고, 그들의 상처 속에서 연민을 배운다. 내가 나이를 먹을수록 말에 힘이 생겨야 한다는 것은 책임과 성찰을 뜻한다. 말이 무거워지려면 내가 먼저 단단해져야 한다. 글쓰기는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길이었다.

나는 종종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교단에서의 하루와 글을 쓰는 시간은 서로 다른 듯하지만 결국 닮아 있다. 아이들 앞에 설 때는 나의 삶을 건네고, 글을 쓸 때는 나의 내면을 건넨다. 두 길은 서로를 비추며 나를 지탱한다. 글은 나를 고백하게 하고, 그 고백은 다시 교단 위의 나를 단단하게 세운다.

삶은 늘 부족하고 모자라다. 그러나 그 모자람을 인정하는 순간, 겸손이 싹튼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다. 부족함이 없다면 나아갈 길도 없다. 글쓰기는 나의 부족을 드러내고 동시에 채우는 길이었다. 문장은 나를 꾸짖고, 다시 일으켜 세웠다.

삶은 바람 앞의 꽃과 같다. 모진 세월을 견뎌내 활짝 핀 꽃도 결국 한 줄기 바람에 쓰러진다. 인생 또한 홀로 견뎌내야 하는 시간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혼자의 시간을 버텨낸 사람만이 빛을 본다. 좋은 일은 나누어야 빛나고, 나쁜 일은 홀로 견뎌야 더욱 강해진다. 나는 아이들에게 늘 말한다. “좋은 일은 함께 나누고, 어려움은 스스로 이겨낼 힘을 길러라.” 그것이 내가 걸어온 길에서 배운 가장 단순한 법칙이다.

교사로서의 나와 글을 쓰는 나 사이에는 늘 긴장이 있다. 교단에서는 아이들을 향해야 하고, 글 앞에서는 자기 안을 깊이 들여다보아야 한다. 나는 그 두 세계를 오가며 균형을 잡는다. 아이들 앞에서는 따뜻하게 희망을 건네고, 글 앞에서는 냉정하게 자신을 직면한다. 그 긴장이 나를 지치게도 했지만, 동시에 나를 살아 있게 했다.

하얀 모니터 앞에 앉아 키보드 위에 손가락을 올리는 순간, 내 심장은 아직도 요동친다. 이 떨림이 사라지지 않는 한 나는 글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글은 내게 삶의 질문이고, 나는 그 질문 앞에서 깨어 있으려 한다. 선택받지 못한 글 앞에서 좌절하지 않는다. 글은 누군가의 눈에 들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내가 살아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내 문장이 누군가에게 닿아 작은 울림을 건넨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는 믿는다. 추운 겨울 끝에 따뜻한 봄이 오듯이, 불안과 초조를 견디며 이어가는 글쓰기 끝에도 반드시 내 삶의 봄날은 올 것이다. 그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교단 위에 서고, 밤이면 글 앞에 선다. 그것이 내가 선택한 길이며,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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