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쓰는 습관으로 나만의 중력을 만들기

by 이만희

방학이 시작되면서 일상의 시간이 조금 달라졌다. 학기 중에는 늘 촘촘하게 짜인 일정에 따라 하루가 흘러갔지만, 지금은 잠시나마 나만의 호흡을 되찾을 수 있다. 새벽마다 깨어 계엄 소식을 확인하지 않아도 되는 아침, 마음은 점차 평온을 찾아간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이라는 혼란 속에서도, 내가 붙잡아야 할 것은 결국 내 안의 고요함이었다. 교사이면서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나에게, 내면의 평화는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나는 방학의 한가운데서 다시 글쓰기로 돌아왔다. 글을 쓴다는 것은 단순히 문장을 만드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나를 해체하고, 다시 조립하는 과정이다. 잘 쓰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내 감정의 결을 따라가다 보면, 그동안 묻어두었던 불안과 두려움이 모니터에 새겨진다. 어떤 날은 ‘만약 그때 내 말과 행동이 달랐다면 결과는 어땠을까’라는 반성으로 시작한다. 돌아갈 수는 없지만 돌아볼 수는 있는 것이 인생이다. 인과의 법칙은 자연에도, 인간의 삶에도 존재한다. 씨를 뿌리지 않고는 수확할 수 없듯, 목표와 행동 없이는 성취를 거둘 수 없다.

아이들과 함께한 교단의 시간은 그 진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아이들이 흰지팡이를 잡고 독립보행을 하기까지는 무수한 시도와 좌절이 쌓여야 한다. 그 과정을 지켜보는 나는 깨닫는다. 성장은 단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눈물 섞인 수십 번의 반복이 어느 날 기적처럼 열매를 맺는 순간을 목도하면서, 나는 글쓰기와 교육의 본질이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도, 가르침도, 결국은 성실한 반복의 예술이다.

글을 쓸 때 나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현재로 끌어온다. 불안한 예측을 두려움으로 남겨두지 않고, 글로 구체화하면서 대안을 찾아간다. 문제는 막연할 때 무겁지만, 글로 써 내려가면 구체적이 되고, 구체적일 때 비로소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글쓰기는 나를 피해자가 아닌 주체로 세워준다. 쓰는 동안 나는 나를 둘러싼 세계를 다시 설계하고, 나만의 중력을 만들어간다. 세상에 이끌려 다니지 않고 내가 세상을 끌어당기는 힘, 그것이 글쓰기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교사로서의 삶은 늘 주어진 상황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 일의 연속이다. 그러나 글쓰기는 내게 또 다른 자유를 준다. 교단에서는 아이들의 발달 속도에 맞추어 조심스럽게 걸음을 맞춰야 하지만, 글을 쓰는 시간만큼은 내 생각의 속도로 달려갈 수 있다. 책을 읽고 문장을 곱씹으며 내 생각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세상에 대한 시선이 조금 더 깊어진다. 독서와 글쓰기는 내 사고를 확장시킬 뿐 아니라, 아이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마저 바꿔놓는다. 한 문장에 오래 머물다 보면, 아이들의 한마디에도 귀 기울이는 힘이 길러진다.

수업 준비, 상담, 기록, 그리고 글쓰기. 하지만 그 단순한 반복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증명한다. 반복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스스로에게 납득될 때까지 쓰고, 다시 고치고, 또다시 반복한다. 그 과정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고통은 기쁨을 위한 필수 과정이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통해 이미 나는 배웠다. 멈추지 않고 쌓아 올린 시간만이 진짜 성취로 이어진다는 것을.

삶을 살다 보면 누구나 욕심에 흔들린다. 그러나 나는 욕심을 던져 버리고, 대신 꿈을 간직하려 애쓴다. 욕심은 무겁고 꿈은 가볍다. 욕심은 나를 움켜쥐지만 꿈은 나를 앞으로 이끈다. 내가 사랑하는 것들은 언제나 단순하다. 가족과의 대화, 책 한 권, 운동장에서의 산책, 아이들과의 수업, 그리고 글쓰기. 그중에서도 글쓰기는 나를 나답게 만드는 가장 강한 힘이다.

매일 쓰는 습관은 나만의 ‘중력’을 만든다. 그 중력은 내가 살아가는 방향을 결정짓고, 세상의 소음 속에서도 나를 붙잡아 준다. 아무리 큰 물결이 밀려와도 나만의 중력이 있다면 나는 나의 판을 설계할 수 있다. 그것이야말로 교사로서의 삶과 작가로서의 꿈을 동시에 이어가는 방법이다. 위대한 성취는 언제나 드러나지 않는 수천 시간의 축적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제 안다. 지금의 나는 내 선택의 결과라는 것을. 목표가 간절할수록 자제력을 발휘해야 하고, 바라는 것이 있다면 대가를 치를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로서, 나는 매일 내 안의 불안을 넘어설 방법을 찾는다. 오늘 쓰는 이 문장이 내일의 나를 끌어당기는 중력이 될 것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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