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로 살아온 시간이 스무 해를 훌쩍 넘었다. 해마다 다른 아이들을 만나고, 매일 다른 교실을 오가지만, 교사의 하루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종이 울리면 수업이 시작되고, 쉬는 시간엔 질문을 받고, 점심엔 생활지도를 한다. 오후에는 회의가 이어지고, 저녁이면 내일의 수업이 기다린다. 돌아보면 하루가 어떻게 흘러갔는지조차 모른 채 저녁이 찾아온다.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마음을 붙잡아 줄 작은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아침 10분 독서’였다.
아직 복도의 불이 켜지지 않은 새벽, 창문 너머로 스며드는 차가운 공기와 교무실의 고요가 나를 맞는다. 책상 위 점자정보단말기를 켜고, 물 한 모금으로 숨을 고른 뒤, 문장 속으로 들어간다. 아침 10분이라는 시간은 길지도 짧지도 않다. 그러나 그 안에서 마음은 고요히 정리되고, 짧은 문장 하나가 하루 종일 나를 지탱한다.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야 한다고 늘 말하면서도, 정작 나는 하루 한쪽 읽기도 어려울 때가 많았다. 지친 몸은 책 보다 잠을 원했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 부끄러웠다. 그러나 아침 독서는 그 부끄러움을 덜어 주었다. 학생들보다 먼저 책을 읽는 습관은 교사로서의 자존심을 회복시켜 주었다. 나는 아이들에게 말한다.
“나도 매일 아침 10분은 책을 읽는다. 그 짧은 시간이 하루를 바꾼다.”
아이들의 고개가 조용히 끄덕여질 때, 말과 삶이 하나로 이어진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나를 읽는 일이다. 저자의 문장을 따라가다 보면 내 삶이 비치고, 내가 보지 못했던 세계가 열린다. 시각장애를 가진 나에게 독서는 특히 더 특별하다. 눈으로 세상을 온전히 볼 수는 없지만, 책을 통해 수많은 눈과 귀를 빌려 살아간다. 책은 나를 자유롭게 하고, 세상과 이어주는 다리가 된다.
이제부터 나는 책을 다 읽어야 한다는 강박을 버렸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많이 읽었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내 안에 남았는가이다. 마음에 닿은 한 문장, 생각을 흔드는 한 질문이면 충분하다. 그 문장을 기록하고, 다시 읽으며 내 생각을 덧붙인다. 그렇게 쌓인 흔적은 곧 나의 또 다른 자서전이 된다.
수업 준비를 하다가도, 학생과 대화를 나누다가도, 문득 아침에 읽은 문장이 떠오른다. 그 문장을 빌려 말을 건네면, 아이들의 눈빛이 잠시 반짝인다. 작은 습관이 내 언어와 태도를 바꿔 놓은 것이다. AI 시대라 불리는 지금, 독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이다. 기계가 정보를 정리해 줄 수는 있지만, 질문을 던지고 의미를 해석하는 일은 인간의 몫이다. 그래서 책은 여전히 필요하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한다.
“정보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건 생각하는 힘이다. 책이 그 힘을 길러 준다.”
때로는 관계 속에서 마음이 흔들릴 때가 있다. 노력해도 인정받지 못한다고 느껴질 때, 내 수고가 헛되다고 여겨질 때, 나는 다시 책을 펼친다. 책 속의 문장이 내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린다.
“더 읽고, 더 쓰고, 더 걸으라.”
그 한 문장이 다시 내 안의 불씨가 된다.
책은 나에게 거창한 성공을 약속하지 않는다. 다만 하루를 단단히 시작하게 하고, 교사로서 조금 더 성실히 살아가도록 만든다. 그것이면 충분하다.
오늘도 나는 고요한 아침, 점자정보단말기를 켠다. 아이들이 오기 전의 짧은 정적 속에서, 책 한 문장이 내 마음을 붙잡는다. 그리고 나는 믿는다. 하루를 지켜 내는 이 10분이, 언젠가 내 삶 전체를 지켜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