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가 되면 교실에 정적이 내려앉을 때, 노트북을 챙겨서 교실로 간다. 창문을 타고 들어온 햇빛이 책상 위에 내려앉는다. 이 순간이야말로 나에게는 또 하나의 배움터이다. 교무실의 소란이 아닌, 텅 빈 교실의 고요가 책을 읽고 싶게 만든다. 억지로라도 시작하면 문장은 곧 내 의식을 붙들고, 나를 다른 차원으로 데려간다.
책은 인류가 남긴 가장 오래된 흔적이자 가장 지속적인 기억이다. 시대가 바뀌고 기술이 변해도, 책은 결코 죽지 않는다. 책 속에서 인류는 사라진 문명을 다시 불러내고, 사라지지 않을 질문을 계속 이어왔다. 유발 하라리가 말했듯, 인간이 다른 생명체보다 강력한 힘을 지닐 수 있었던 까닭은 ‘상상하는 능력’에 있다. 그 상상의 근원은 결국 텍스트다. 활자와 문장이 우리를 타자의 삶 속으로 불러들이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와 연결한다.
나는 하루의 조금씩 책을 읽는다. 꾸준히 읽는 행위는 내면을 단단하게 조율하는 의식과도 같다. 한강 작가님도 매일 조금씩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읽는다는 것은 곧 생각을 확장하는 훈련이며, 삶을 통째로 다시 써 내려가는 예행연습이다.
교사는 가르치는 존재이기 이전에 배우는 존재다. 가르침의 뿌리는 결국 배움 속에 있다. 학생들을 앞에 두고 서기 위해, 나는 나 자신을 책 속의 제자로 세운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의 데이지도서 온라인 서비스는 내게 무궁한 텍스트의 바다를 열어주었다. 10만 권의 책 가운데 관심 있는 책을 고르는 순간,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는 전율을 느낀다.
그러나, 어떤 책을 선택할지 고민하다 보면 마음은 언제나 고전을 고르게 된다. 유행은 지나가지만 고전은 남는다.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 스테디셀러보다 고전을 집어 드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고전은 시대의 파도에 휩쓸리지 않고도 인간의 영혼에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니체와 쇼펜하우어가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그들이 삶의 무게를 이론으로 설명하기보다 ‘새롭게 살아내라’는 메시지로 흔들기 때문이다.
삶은 고통이고, 세계 또한 고통이다. 그러나 그 고통을 감내하게 하는 힘은 독서에서 비롯된다. 책 속에서 얻은 사유는 나를 교사로서, 인간으로서 다시 중심을 잡게 만든다.
나이가 들수록 관계는 좁아지고, 고독은 그림자처럼 따라온다. 그러나 책은 나를 고립의 감옥에 가두지 않는다. 소설은 타인의 삶을 내 안에 불러오고, 공감의 감각을 되살린다. 그것은 곧 학생을 이해하는 힘, 동료를 품는 힘으로 이어진다. 혼자가 두렵지 않은 이유는 책이 내 곁에 있기 때문이며, 여전히 타인과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은 독서로부터 나온다.
자기 계발서는 성취의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 아니라, 절제의 힘을 일깨운다. 반복과 되새김이 학습의 본질이라는 사실을, 나는 책을 통해 배운다. 읽고, 기록하고, 다시 읽으며 사유의 흔적을 쌓아 올리는 과정은 나를 글쓰기로 이끈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독서가 건넨 은밀한 유산이 된다.
독서는 지식을 확장하는 데서 멈추지 않는다. 그것은 세계를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훈련이며, 기존의 생각을 의심하게 하는 비판적 사고의 토대다. 어휘력이 늘고 상상력이 자란다. 무엇보다 책 속에 몰입하는 순간, 나는 일상의 소음을 잠시 벗어난다. 글쓰기가 향상되고, 삶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또한 독서의 파생된 선물이다.
행복은 강도가 아니라 빈도에 있다. 매일의 작은 독서는 소박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쌓는다. 공원 벤치에서, 빈 교실 책상 위에서, 잠들기 전의 고요 속에서 만나는 책 한 권이 나의 삶을 지탱한다. 책은 나의 시간을 조금 더 단단히, 조금 더 빛나게 붙들어 준다.
중년이 된 지금, 나는 책을 통해 나를 새롭게 구성한다. 교사로서의 삶, 인간으로서의 존재는 매일의 독서 속에서 조금씩 새로워지고 있다. 매일 꾸준히 책을 읽는다는 단순한 습관은, 사실 가장 철학적인 자기 수련이자 삶을 지탱하는 깊은 기둥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