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 한 스푼
을 딱딱 세게 치며 들어왔다. 오늘따라 표정이 어둡다. 아침에 음성유도신호기가 고장 나서 학교 입구를 찾는데만 10분이 걸렸단다.
나는 A학생 곁으로 다가가 앉으며 생각했다. 지금 이 아이에게 필요한 건 무엇일까. 동정? 위로? 아니면 '괜찮아질 거야'라는 공허한 약속?
특수교사로 살아온 20여 년. 나는 수없이 많은 질문들과 마주했다.
"선생님, 우리 애는 언제쯤 행복해질 수 있을까요?"
학부모님들의 이 질문 속에는 한 가지 전제가 깔려 있다. 지금은 불행하니, 나중에 상황이 나아지면 그때 행복해지자는 것. 하지만 그 '나중'은 결코 오지 않는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경험을 부정-중립-긍정의 선 위에 놓는다고 한다. 하지만 교실에서 나는 다른 것을 배웠다. 그 선은 일직선이 아니라는 것을.
시각장애와 자폐 스펙트럼 장애까지 가진 B학생은 매일 같은 급식 메뉴를 먹어야 하고, 같은 자리에 앉아야 하며, 같은 순서로 하루를 보내야 한다. 어른들이 보기엔 답답하고 불편한 삶이다. 하지만, B 학생은 그 안에서 자신만의 질서와 안정을 찾았고, 그것이 그 아이에게는 행복이었다.
그들에게 행복은 '고통이 없는 상태'가 아니었다. 고통 한가운데서 발견한 작은 불씨였다.
니체는 말했다. "나를 죽이지 못하는 것은 나를 더 강하게 만든다"라고.
하지만 교실에서 나는 더 정확한 표현을 발견했다.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강해지는' 것이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C학생은 또래보다 학습 속도가 느리다. 하지만 B학생은 반 아이들 중 누구보다 친구의 마음을 잘 읽는다. 누가 슬픈지, 누가 도움이 필요한지 가장 먼저 알아차린다. C학생의 엄마는 말했다.
"이 아이가 태어나고 처음 2년은 지옥이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 아이 덕분에 제가 더 깊은 사람이 된 것 같아요."
트라우마는 우리를 약하게도, 강하게도 만든다. 중요한 건 그 과정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느냐다. 주저앉을 것인가, 일어설 것인가. 그리고 일어섰을 때 우리는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더 단단하고, 더 유연하고, 더 넓은 사람이 된다.
오늘 급식 메뉴가 A학생이 좋아하는 떡볶이였다. 그것만으로도 A학생의 하루는 달라졌다. 음성유도신호기가 고장 나서 힘들었던 아침은 여전히 힘들었지만, 떡볶이는 그 힘듦과 공존하며 A학생을 웃게 했다.
나는 깨달았다. 행복은 조건부가 아니라는 것을. '장애가 없어지면', '상황이 나아지면',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행복해지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순간, 고통 한가운데서도 행복의 씨앗은 발아할 수 있다.
그래서 힘든 시기일수록 우리는 더욱 행복을 말해야 한다. 행복을 미래에 격리시키지 말고, 지금 여기서 찾아야 한다.
오늘 내가 가르친 건 불완전한 이 순간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교실 문을 연다. 그 안에는 세상이 '불행하다'고 규정한 아이들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내게 가르쳐준 건 정반대다. 행복은 조건이 아니라 선택이며, 가장 어두운 곳에서도 빛은 존재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