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나 질병으로 시력을 잃은 성인들이 안마를 배우려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이곳에서, 나는 때때로 '말'이라는 것의 무게를 견디다 못해 주저앉고 싶을 때가 있다.
"***님, 안녕하세요."
문을 열고 들어서는 학생에게 나는 이름 석 자를 또렷이 불러 인사한다. 그저 "안녕하세요"가 아닌, 그 사람의 이름을 담은 인사. 이것이 내가 찾아낸, 어둠 속에서 서로를 확인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시각장애인에게 이름을 부르는 것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여기 있음을 내가 알고 있다'는 존재의 증명이며, '당신은 소중하다'는 무언의 선언이다.
학생들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고맙습니다." 그 답례 속에서 나는 말이 가진 온도를 느낀다. 같은 인사말이라도 어떤 온도로 전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마음은 열리기도 하고 닫히기도 한다. 말은 보이지 않지만, 온도는 누구나 느낄 수 있다.
점심시간, 학생들과 함께 급식실 자리에 앉는다. 젓가락 부딪치는 소리, 누군가의 웃음소리, 그 사이사이로 흐르는 일상의 이야기들. 그 시간 속에서 나는 배운다. 말이란 정보를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라, 마음을 나누는 그릇이라는 것을.
"선생님, 오늘 저에게 안마받으신 어르신이 제 손을 잡으며 '고맙다'라고 하시더라고요."
한 학생이 실습 경험을 들려준다. 그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나는 즉시 답했다.
"훌륭해요! 시도하면 성공 아니면 발견입니다."
나는 '잘했어요'라는 평범한 칭찬 대신, 그의 도전 자체를 빛내주는 말을 선택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결과에 대한 평가가 아니라, 과정에 대한 인정이기 때문이다. 빛을 잃고 다시 일어서려는 사람에게 "해보면 안다", "하면 할 수 있다"는 말은 추상적 격려가 아니다. 그것은 절벽 끝에 선 이에게 건네는 밧줄이다.
말투와 목소리는 우리의 말씨를 결정하고, 말씨는 곧 그 사람의 인격을 드러낸다. 교단에 선 지 오래되었지만, 나는 여전히 내 말의 온도를 점검한다. 혹시라도 날카로운 말, 무심한 말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았는지.
어느 날, 한 학생이 실수로 커피를 쏟았다. 바닥에 번진 갈색 액체를 보며 학생은 움츠러들었다. 나는 가벼운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요. 제가 치우면 되죠. 커피 한 잔 더 드릴까요?"
그 학생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고, 얼굴에 안도의 빛이 스쳤다. 만약 내가 그 순간 "조심하셨어야죠", "앞으로 더 주의하세요"라고 말했다면 어땠을까. 실수는 같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받을 상처의 깊이는 달랐을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을 나는 교실에서 매일 확인한다. 감사의 언어를 쓰면, 신기하게도 감사한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복을 부르는 말을 하면, 복이 현실이 되어 찾아온다. 이것은 미신이 아니라 진리다. 우리가 사용하는 언어가 우리의 세계를 만들기 때문이다.
한 학생은 처음 학교에 왔을 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요. 제 인생은 여기서 끝났습니다."
나는 그 말을 부정하지 않았다. 대신 매일 그에게 물었다.
"오늘은 무엇을 해보고 싶으세요?"
"오늘 배운 것 중에 가장 재미있었던 건 뭐였나요?"
"내일은 어떤 것에 도전해 볼까요?"
질문은 생각을 바꾸고, 생각은 말을 바꾸고, 말은 행동을 바꾼다. 6개월이 지난 후 그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 저 안마사 자격증 따면 작은 샵이라도 열어보고 싶어요."
끝났다던 인생에 새로운 문장이 쓰인 순간이었다. 그의 말이 바뀌자, 운명도 함께 방향을 틀었다.
작은 빗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일상 속 작은 말의 습관이 모여 우리의 운명을 이룬다. 나는 이것을 교단에서, 시각을 잃은 성인 학생들과의 만남에서 깊이 배웠다. 그들의 재활과 배움의 길에서 내가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따뜻한 말, 존중의 언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하는 응원이었다.
말은 마음의 온도계이며, 관계의 창이다. 내가 오늘 건넨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어둠을 걷어내는 작은 빛이 되기를, 우리 모두가 고품격의 말씨로 더 풍요로운 운명을 만들어가기를.
아침마다 교실 문을 열며 나는 다짐한다. 오늘도 다정한 말투로 말을 하리라고. 이름을 부르며 존재를 인정하고, 실패를 발견이라 격려하며, 감사와 응원의 언어로 학생들의 마음에 불을 켜리라고.
말투의 온도를 높이는 습관,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삶에서 지켜내야 할 가장 귀한 인격의 품격이다. 그리고 그 품격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매일 아침 누군가의 이름을 정성껏 부르는 것, 실수한 이에게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작은 성장에 진심으로 기뻐해주는 것. 그런 평범한 순간들 속에 말투의 온도가, 마음의 품격이 깃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