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주는 말투, 절망을 주는 말투

by 이만희

교무실 책상에 있는 업무용 전화벨이 울릴 때마다 심장이 먼저 두근거렸다. 5년간 입학 상담을 하면서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가고 있었다.

"선생님, 제가 이 학교를 다니면 정말 자립할 수 있을까요?"

떨리는 목소리로 건네지는 질문들. 그 안에는 간절함과 불안이 뒤섞여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내가 건네는 한 마디 한 마디가 누군가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 신중하게, 더 따뜻하게 말하려 애썼다.

"학교를 다니면서 돈을 벌 수 없을까요?"라는 질문에는 한국어강사 취업의 길을 열어주었다. "안마 말고 다른 것을 배울 수 없을까요?"라는 절박한 물음에는 공무원임용준비반을 만들어 실제로 공무원도 배출했다. 학생들의 질문은 곧 나의 과제가 되었고, 나는 그들의 가능성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 뛰어다녔다.

그러나 혼자만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학교의 지원 없이, 나만 믿고 입학하는 학생들의 무게가 어깨를 짓눌렀다. 내 말 하나에 집에서의 은둔 생활을 끝내고 학교로 나오기로 결심한 학생들. 그들이 나의 감언이설만 듣고 학교를 선택했다면 어쩌나. 그 두려움은 점점 커져갔다.

어느 순간부터 내 말투가 거칠어졌다. 짜증 섞인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흘러나갔다.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더 이상 입학 상담을 하면 공황장애가 올 것 같았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되었다.

가장 괴로웠던 건 나로 인해 자립을 선택하려던 사람들이, 나의 거친 말투 때문에 의지를 꺾는다는 생각. 희망을 주어야 할 사람이 상처를 주고 있다는 자각. 마치 죄를 짓는 것 같았다.

나는 깨달았다. 내가 원했던 것은 믿음을 받는 존재가 아니라, 믿음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이었다. 내 말은 방패와 같아야 했다. 세상의 차갑고 날카로운 시선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줄 수 있는 단단하고 따뜻한 방패. 그러나 내 말은 방패가 되지 못했다. 오히려 때로는 날카로운 칼날처럼 그들의 마음에 상처를 냈다.

말투는 참 묘한 것이다. 같은 내용이라도 어떻게 전하느냐에 따라 희망이 되기도 하고 절망이 되기도 한다. "힘들 거예요"와 "힘들겠지만 해낼 수 있을 거예요"는 사실상 같은 말이지만, 듣는 사람의 마음에 남기는 것은 전혀 다르다.

시각장애학생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것이 나의 일이다. 그런데 정작 나는 내 말투가 그들에게 어떤 세상을 보여주고 있는지 보지 못하고 있었다. 피로와 부담감에 지친 나는, 내가 전하는 말의 온도를 잃어버렸던 것이다.

말투는 단순히 말하는 방식이 아니다. 그것은 내 마음의 상태이고, 상대에 대한 태도이며, 세상을 대하는 자세다. 내가 지쳐 있을 때, 그 지침은 고스란히 말투에 묻어난다. 그리고 그 말투는 다시 상대를 지치게 만든다.

나는 입학 상담을 그만두기로 했다. 더 이상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방패가 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침묵으로 도망칠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교사였고, 매일 학생들과 말을 나누어야 했다. 그렇다면 바뀌어야 하는 것은 역할이 아니라 나 자신이었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나는 내 말투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피곤하다는 이유로, 바쁘다는 핑계로 나는 얼마나 많은 차갑고 날 선 말들을 내뱉었던가. "그건 안 돼요"라고 단칼에 자르던 말들을, "어떻게 하면 가능할지 함께 생각해 볼까요?"로 바꾸는 연습을 했다.

쉽지 않았다. 습관이 된 말투를 바꾸는 것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그러나 조금씩, 정말 조금씩 변화가 찾아왔다. 학생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학생들의 목소리에 활력이 돌아왔다.

이제 나는 안다. 호감 가는 말투란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그것은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려는 진심에서 나온다는 것을. 내가 지쳐 있어도, 힘들어도, 상대를 마주할 때만큼은 그 사람에게 온전히 집중하려는 태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은 방패가 될 수 있다. 세상의 날 선 시선과 차가운 편견으로부터 누군가를 지켜줄 수 있는 따뜻한 방패. 그러려면 먼저 내 마음을 돌봐야 한다. 방패도 녹슬면 제 역할을 할 수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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