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3시, 수업을 마치고 교무실 책상에 앉아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혹시... 입학 상담 담당 선생님 되십니까?"
수화기 너머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자신을 충남 보령에 사는 L씨라고 소개했다.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교회 일을 하다가 갑작스러운 실명으로 지금은 집에만 있다고 했다. 그의 목소리는 차분하고 포근하게 들렸지만, 어딘가 완전히 꺼지지 않은 불씨 같은 게 느껴졌다.
그는 학교 유튜브 영상을 보고, 인터넷을 뒤져가며 정보를 찾아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심조심 질문을 꺼냈다. 입학은 어떻게 하는지, 기숙사는 어떤지, 수업은 무엇을 배우는지. 하나하나 물어오는 그의 목소리엔 기대와 불안이 함께 섞여 있었다.
나는 통화가 끝날 무렵 그에게 물어보았다.
"제가 입학 원서 접수 기간에 다시 연락드려도 될까요?"
나는 연락처를 물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더니 번호를 알려주면서 덧붙였다.
"그런데... 한 달 정도 가족들과 더 고민해 보고 직접 연락드려도 될까요?"
40여 년을 살아온 고향을 떠나 낯선 도시로 가야 한다는 것. 가족과 함께 이주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장애인 학교'에 다녀야 한다는 현실. 그의 어깨에 놓인 짐이 얼마나 무거울지, 나는 짐작할 수 있었다.
"그럼 충분히 고민해 보시고 한 달 후에 제가 직접 연락드리겠습니다."
내가 말하자 그는 화들짝 놀란 듯 말했다.
"아닙니다, 제가 연락드리겠습니다. 바쁘신데 긴 통화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달력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를 잊지 않으려고.
한 달이 흘렀다.
약속한 날 아침 9시, 나는 떨리는 손으로 그의 번호를 눌렀다.
"선생님 바쁘실 텐데 저를 기억해 주시고 직접 저한테 전화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가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선생님과의 통화를 잊지 않고, 한 달 동안 생각하며 기다렸습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 달 동안 저를 생각해 주셨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선생님이 계신 곳이라면, 저도 용기를 내서 공부하고 싶습니다."
그날, 그는 입학을 결심했다.
오랜 시간 시각장애 학생들을 가르치며, 나는 입학 상담에 대한 나만의 원칙을 만들었다.
첫째, 전화가 오면 내 감정 상태와 상관없이 밝은 목소리로 받는다.
둘째, 상대가 말할 땐 절대 끼어들지 않는다.
셋째, 상대보다 조금 천천히 말하고, 같은 질문을 다시 해도 동일한 말투를 유지한다.
마지막으로, 상담 내용을 꼼꼼히 기록해서 다음에 통화할 때 기억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건 단순한 업무 매뉴얼이 아니었다. 상담을 통해 학생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고 싶었다. 내가 먼저 존중받기보다 상대를 먼저 존중하는 것. 나를 낮출수록 오히려 품격은 높아진다는 걸, 나는 조금씩 배워갔다.
온 마음을 다해 상담에 임하는 건 책임감 때문이기도 했지만, 솔직히 이 일이 좋았다. 나를 만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보며 행복했다. 그들의 희망찬 눈빛과 감사의 인사가 내게는 큰 보람이었다.
그는 학교를 졸업하고 지금 서울에서 헬스키퍼로 일한다. 뛰어난 안마 실력으로 인기가 많고, 행복하게 지낸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스승의 날이면 잊지 않고 전화를 걸어오는 그의 목소리엔 여전히 겸손함과 따뜻함이 묻어난다.
그때 그 한 통의 전화가 한 사람의 자립을 도왔다는 생각에, 나는 교사로서 큰 보람을 느낀다.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수단이 아니다. 말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세상을 바꾸는 마법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고, 용기가 되고, 사랑이 될 수 있다는 걸 기억하며, 오늘도 나는 세상을 향해 말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