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끝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말투

by 이만희

캄캄한 세상에서 아이들이 점자라는 빛을 통해 세상을 읽어나가는 모습은, 매일 나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특히 아이들의 작은 실수와 어려움 앞에서 내가 어떤 언어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할 때면, 말 한마디의 무게를 절실히 느낀다.

아이들은 처음 점자를 배울 때, 마치 암호처럼 느껴지는 점들의 배열과 사투를 벌인다. 볼록 솟아오른 점 하나하나를 손끝으로 더듬으며, 그것이 어떤 글자인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끊임없이 되뇐다. 작은 점 하나라도 잘못 읽으면 완전히 다른 글자가 되어버리기에, 아이들은 쉽게 좌절하고 낙담한다.

"왜 점자를 제대로 읽지 못하는 거니? 그렇게 여러 번 가르쳐줬는데."

과거의 나는 답답한 마음에 이런 날카로운 말을 내뱉은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이었는지 부끄러울 따름이다. 아이들은 세상을 보는 대신 세상을 만져야 한다. 손끝으로 세상을 느끼고, 그 감각을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고된 일인지, 나는 몰랐다. 나의 조급함이 아이의 작은 날개마저 꺾어버릴 수 있었다.

그날 이후, 나는 아이들의 작은 실수 앞에서 숨을 크게 쉬고, 마음속으로 세 번을 센 후에 입을 열기로 다짐했다. 그리고 아이의 어려움을 비난하기보다는, 그 노력을 보려고 애썼다.

"00야, 점자 읽는 게 아직은 어렵지?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노력하는 모습이 정말 대단해. 조금만 더 힘내면 분명히 잘할 수 있을 거야."

나의 따뜻한 격려에 아이의 얼굴이 밝아지는 것을 보면서, 나는 언어의 힘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긍정적인 말 한마디는 아이의 마음속에 희망의 씨앗을 심고, 용기를 북돋아준다. 반대로 부정적인 말은 아이의 자존감을 갉아먹고, 배움에 대한 의욕을 꺾어버린다. 마치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언어는 아이의 성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아이들은 점형이 헷갈릴 때마다 나에게 달려와 묻는다. 같은 질문을 수없이 반복해서 받을 때면, 솔직히 가끔은 짜증이 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성심껏 답변하려고 노력한다. 아이들의 질문은 단순히 점형에 대한 궁금증이 아니라, 나에 대한 믿음과 의지의 표현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아이의 질문을 귀찮아하거나 짜증 섞인 목소리로 대답한다면, 아이는 어떻게 생각할까? 아마 점자에 대한 흥미를 잃고, 더 이상 질문하는 것을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나의 작은 짜증이 아이의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고, 배움을 포기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나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설명해 주고, 때로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곁들여 흥미를 유발한다. 나의 노력 덕분인지, 아이들은 점자를 즐겁게 배우고, 실력도 조금씩 향상되었다.

나는 점자를 가르치면서 아이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려고 노력한다. 표정, 몸짓, 말투 하나하나에 숨겨진 의미를 파악하고, 아이가 무엇을 어려워하는지 세심하게 살핀다. 진심 어린 관찰은 아이의 마음을 이해하는 첫걸음이다.

관찰을 통해 아이의 어려움을 파악했다면, 이제 칭찬과 격려를 통해 아이의 잠재력을 끌어낼 차례다. 나는 아이의 작은 성과에도 아낌없는 칭찬을 보낸다.

나는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단어를 사용하려고 애쓴다. "잘못했어" 대신 "다시 해볼까?", "안 돼"대신 이렇게 하면 더 좋을 거야"라고 말한다. 긍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면 아이는 좌절감 대신 희망을 느끼고,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다.

나는 매일 아이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언어의 중요성을 깨닫고, 언어의 온도를 높이는 연습을 한다. 아이들의 작은 실수 앞에서 인내심을 갖고, 따뜻한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으려 한다. 나의 작은 노력이 아이들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더 나아가 세상을 밝히는 빛이 되기를 소망한다.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서투른 교사다. 하지만 아이들의 밝은 미소를 보면서, 끊임없이 배우고 성장해 나갈 것을 다짐한다. 아이들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점자의 무늬처럼, 나의 언어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의 무늬를 새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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