빽다방에서의 경청과 리액션

by 이만희

수업이 끝난 교무실은 언제나 하루의 고단함과 안도감이 뒤섞인 묘한 공기로 채워진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자리에 돌아와 앉았는데, 근로지원사 선생님이 메모지를 건넸다. 충남 서산에서 전화가 왔다고. 낯선 지명에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다 문득, 흐릿한 기억의 편린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몇 해 전, 한 아이와 어머니가 입학 상담을 왔던 날이 있었다. 아이의 눈빛에는 경계심과 불안이, 어머니의 얼굴에는 간절함과 미안함이 함께 서려 있었다. 긴 상담 끝에 두 사람은 집으로 돌아갔고, 안타깝게도 아이는 수도권의 다른 학교를 선택했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곳에서 부디 잘 적응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억 한편에 묻어두었다.

불현듯 아이의 안부가 궁금해졌다. 전달받은 번호로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익숙하면서도 지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는 수도권 장애인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고 했다. 여러 문제에 시달리다 결국 집으로 돌아왔고, 지금은 일반 학교에 다니지만 마음의 문을 닫은 채 학교에 가지 않는 날이 더 많다는 이야기였다.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의 깊은 한숨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 부탁 하나만 드려도 될까요?"

어머니는 아이와 잠시 전화 통화라도 해줄 수 있겠냐고 물었다. 그 간절한 부탁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목소리만으로 아이의 닫힌 마음을 온전히 헤아릴 수 있을까. 나는 잠시 망설인 후, 전화가 아니라 직접 아이를 만나러 가겠다고 말했다. 어머니는 더욱 미안해하며 어쩔 줄 몰라했다.

그 순간, 아이의 모습 위로 열일곱의 내가 겹쳐 보였다. 갑작스러운 실명으로 세상의 모든 빛을 잃고 어둠 속에서 방황하던 시절. 내 손을 잡아주는 이 없이 혼자 얼마나 많은 밤을 울었던가. 아이의 마음이 남일 같지 않았다.

학교에 보고하고 출장을 상신했다. 나는 그 시절의 나를 만나러 가는 기분이었다.

아이의 집 근처 빽다방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약속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해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20분쯤 지나, 후드 티를 머리끝까지 뒤집어쓴 중학교 3학년 남학생이 카페 문을 열고 들어섰다.

몇 해 전보다 훌쩍 자란 키. 그러나 여전히 주변을 경계하는 듯한 태도는 그대로였다. 우리는 구면임에도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음료를 주문했다.

차가운 음료가 담긴 컵에 맺힌 물방울이 흘러내렸다. 우리 사이에는 침묵이 흘렀다. 나는 일부러 말을 걸지 않았다. 그저 아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이야기를 꺼낼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었다.

어색한 공기를 견디지 못한 아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선생님, 여기까지 왜 왔어요?"

"응, 근처에 올 일이 있어서. 지나가는 길에 생각나서 들렀지."

"저 데리러 온 거 아니에요?"

"아니야. 그냥 어떻게 지내는지 얼굴도 보고 싶고, 궁금해서 온 거야."

아이의 날 선 질문 속에서, 나는 오히려 아이의 내면과 소통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을 느꼈다. 아이는 내가 왜 이곳까지 왔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이 목적이 아님을, 그저 '너'라는 사람 자체가 궁금해서 먼 길을 달려왔다는 진심을 전하고 싶었다.

대화는 툭, 하고 끊어졌다 이어지기를 반복했다. 나는 조급해하지 않고 아이의 호흡에 내 시간을 맞추었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고민하다, 아이의 관심사를 물었다.

"혹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나, 꿈같은 거 있어?"

"없어요."

단칼에 잘라내는 짧은 대답. 대화를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럼 좋아하는 건 뭐야?"

잠시 머뭇거리던 아이의 입에서 '운동'이라는 단어가 나왔다.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발견한 기분이었다.

"그래? 운동 좋아하는구나. 우리 학교에 오면 육상도 할 수 있고, 골볼이라는 시각장애인 구기 종목도 배울 수 있는데. 정말 재미있어."

'운동'을 할 수 있다는 말에 아이의 음성이 미세하게 흔들렸다. 처음으로 학교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순간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아이가 던지는 모든 말에 온 마음을 다해 귀를 기울였다.

아이가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 한마디를 소중히 받아 안았다. 대화 내내 손에서 놓지 않던 휴대폰을 어느새 테이블 위에 내려놓은 아이는, 놀랍게도 자신의 이야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아이의 말을 되풀이하며 공감해 주었을 뿐이었다. 아이가 자신의 감정이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아, 정말?", "진짜 그랬겠다", "그랬구나" 하며 진심이 담긴 반응을 했다. 특별한 조언이나 섣부른 충고는 하지 않았다. 오직 아이의 목소리에, 그 안에 담긴 감정에 집중했다.

나는 아이에게 모든 발언권을 넘겨주고, 인내심을 가지고 끝까지 들어주는 청자가 되었다.

한 시간 반쯤 지났을까. 컵 안의 얼음이 모두 녹아 맹물이 되었을 무렵,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페 문을 나서며 이제 그만 헤어져야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아이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저… 선생님 계신 학교에 가볼래요."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갑작스러운 아이의 말에 너무 놀라 잠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아이는 덧붙였다. 학교에 가서 운동을 정말 열심히 해보고 싶다고.

그 말에는 더 이상 이전의 경계심이나 불안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직 새로운 시작에 대한 작은 설렘과 용기가 담겨 있었다.

돌아오는 길, 나는 내내 생각에 잠겼다.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그저 아이의 말에 귀 기울이고, 짧은 감탄사로 반응해 주었을 뿐이었다. 화려한 언변이나 논리적인 설득은 없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스스로 용기를 내고,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아마도 아이는 난생처음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들어주는 경험을 했던 것이 아닐까. 판단하거나 평가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에게 집중해 주는 사람 앞에서 아이는 비로소 안전함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그 긍정적인 반응 속에서 대화의 즐거움을 깨닫고, 잊고 있던 자신감을 되찾았던 것이리라 믿는다.

우리는 흔히 말의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날의 경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때로는 어떤 말을 하느냐보다 어떤 태도로 듣고, 어떤 온도로 반응하느냐가 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더 큰 힘을 갖는다는 것을.

진심이 담긴 경청과 따뜻한 반응은 그 자체로 "나는 너의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되어 있어", "나는 너를 존중하고 있어"라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다.

그날, 나는 한 아이의 마음을 얻은 것이 아니었다. 아이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아주 작은 문틈을 만들어주었을 뿐이었다. 내가 한 일은 그저 아이의 말을 끝까지 들어주는 인내심과 "그랬구나"라는 따뜻한 말투, 그것이 전부였다.

그 후 아이는 학교에 입학했다. 골볼 종목으로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 출전해서 금메달을 땄고, 지금도 국가대표의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대학에 진학해 특수체육을 전공하고자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나는 그날 빽다방에서 마주 앉아 있던 경계심 가득한 아이가 아닌, 당당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한 사람을 생각한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

이전 15화손끝에서 피어나는 아름다운 말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