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식사를 마치고 들이치는 나른한 햇살에 잠시 눈을 감았던 오후였다. 모처럼의 평화는 교무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깨졌다. "혹시, 입학 상담을 하는 선생님이 계신가요?"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한 여성이 조심스럽게 나를 찾고 있었다. 솔직히 말해, 황금 같은 휴식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생각에 마음 한구석이 불편했지만, 교사라는 이름 아래 그 마음을 감추고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네, 제가 담당자입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죠."
내 앞에 앉은 어머니의 얼굴에는 깊은 수심이 가득했다. 일반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이 점점 시력을 잃어가고 있으며, 설상가상으로 학교 폭력과 따돌림에 시달리다 결국 학교를 떠나 자기 방에 갇혀버렸다는 이야기를 떨리는 목소리로 털어놓았다. 답답한 마음에 밤새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시각장애 특수학교인 우리 학교를 알게 되어 무작정 찾아왔다고 했다. 함께 오고 싶었지만, 아들은 방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오려 하지 않았고, 마치 실어증에 걸린 사람처럼 입을 굳게 닫아버렸다고 했다. 어깨를 떨며 하소연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 마음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상처가 아이의 마음을 얼마나 깊이 멍들게 했을까.
한참을 망설이던 어머니가 아들의 휴대폰 번호를 조심스럽게 내게 건넸다. "제가… 이 아이에게 연락을 좀 해봐도 괜찮을까요?" 내 제안에 어머니는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은 심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나는 곧바로 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아이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날부터 보이지 않는 아이를 향한 나의 짧은 카톡이 시작되었다.
"**야, 반가워. 선생님이야. 오늘은 가을이 왔는지 날씨가 참 좋구나. 창문을 열어 하늘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단다. 너도 그런 하늘을 보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
"**야, 오늘 아침도 카톡으로 인사를 한다. 선생님은 오늘 수업이 많은 날이라 조금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출근했어. **도 집에서 밥 잘 챙겨 먹고 지내기를 바랄게."
"**야, 안녕. 오늘은 우리 학교에서 축제를 하는 날이야. 학생들이 그동안 준비한 노래와 춤을 보여주는 날이라 벌써부터 설렌다. **도 시간 되면 우리 학교에 놀러 왔으면 좋겠어."
일주일에 한두 번, 날씨 이야기, 학교의 소소한 행사 이야기, 때로는 아무 의미 없는 안부 인사를 꾸준히 보냈다. 아무런 답장이 없는 채팅창은 마치 메아리 없는 깊은 동굴과 같았다. '혹시 스팸으로 생각하고 차단한 건 아닐까?', '이런다고 아이의 마음이 열릴까?' 스스로를 의심하는 순간도 많았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내 말이 아이에게 당장 가닿지 않더라도, 세상 어딘가에 너를 기억하고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는 작은 신호만이라도 전해지길 바랐다. 내 말투 하나하나에, 문장 하나하나에 아이를 향한 걱정과 따뜻한 응원의 마음을 담아 보냈다. 그것은 단순한 문자가 아니라, 닫힌 방문을 향한 조심스러운 노크였다.
그렇게 6개월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기적처럼 아이가 우리 학교에 입학하겠다는 연락을 해왔다. 처음 교문으로 들어서던 날, 잔뜩 움츠러든 어깨와 불안한 눈빛을 하고 있던 아이의 모습이 아직도 선명하다.
시간은 흘러, 그 아이는 이제 우리 학교에 없어서는 안 될 보석 같은 존재가 되었다. 학생회 활동부터 다양한 외부 대회까지, 학교를 대표하며 눈부신 성과를 거두는 당당한 고등학생으로 성장했다. 최근에는 비즈쿨 창업 아이디어 경진대회에 참가하게 되었고, 내가 지도교사로서 아이와 함께하게 되었다.
대회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같은 방 침대에 나란히 누웠을 때였다. 문득 6년 전의 기억이 떠올라 아이에게 물었다.
"**야, 6년 전에 선생님이 카톡 보낸 거 혹시 기억하니?"
아이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가, 이내 나를 향해 돌아누우며 맑게 웃었다.
"네, 당연히 기억하죠. 매일 아침 울리는 선생님의 카톡이, 세상과 저를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었어요. 그때는 답장할 용기가 없었지만, 사실은 매일 기다렸어요. 선생님 덕분에 제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었어요. 정말 감사한 마음,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
아이의 담담한 고백을 듣는 순간, 내 마음속에 뜨거운 무언가가 울컥 차올랐다. 내가 무심코 던졌던 말의 씨앗들이 아이의 꽁꽁 얼어붙었던 마음의 땅에 뿌려져, 이토록 아름다운 나무로 자라났다는 사실이 벅찬 감동으로 다가왔다. 그 밤, 나는 교사로서 나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말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 말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말을 담아내는 그릇, '말투'라는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특히 우리 학생들처럼 시각 정보에 제약이 있는 아이들에게, 상대방의 따뜻한 말은 세상을 인지하는 매우 중요한 감각이 된다. 따뜻한 말은 아이들의 마음속에 환한 등불을 켜주지만, 차갑고 무심한 말은 세상을 향한 문을 더욱 굳게 닫게 만드는 빗장이 되기도 한다.
그 아이에게 내가 보냈던 메시지들은 어쩌면 대단한 위로나 해결책을 담고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안에는 '나는 널 기다리고 있어', '네 편이 되어줄게'라는 따뜻한 마음의 온도가 담겨 있었다. 그 온기 어린 말투가 아이의 닫힌 방문 틈새로 스며들어, 차가운 절망을 녹이고 다시 한번 세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었던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이를 처음 만난 어머니께 건넸던 나의 말투 또한 중요했다. 만약 내가 그날 귀찮다는 표정으로, 사무적인 말투로 응대했다면 어땠을까. 아마 어머니는 아들의 이야기를 꺼내놓을 용기조차 내지 못했을 것이고, 아이의 번호를 내게 건네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모든 일의 시작은, 마음을 담아 건넨 나의 첫 말투였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말투는 오늘 어떤 온도를 담고 있는가. 무심코 던진 우리의 말이 누군가에게는 차가운 비수가 되기도 하고, 따뜻한 위로가 되기도 한다. 우리는 말투라는 보이지 않는 옷을 입고 매일 다른 사람들을 만난다. 그 옷이 상대방에게 포근함과 안정감을 주는지, 아니면 불편함과 경계심을 주는지 한 번쯤 돌아볼 필요가 있다.
호감 가는 말투는 타고나는 재능이 아니라, 상대를 향한 관심과 존중을 담아내려는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다. 오늘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특히 마음의 문을 닫고 있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를 담은 말투로 조심스럽게 노크해 보는 것은 어떨까. 우리의 그 작은 노크가 한 사람의 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시작이 될지도 모른다.
내 손가락 끝에서 시작된 작은 온기가 한 아이의 우주를 밝혔던 것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