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이라는 이름의 건축

생각 한 스푼

by 이만희

`우리는 기억으로 지어진 집에 산다.

한 사람의 삶은 그가 겪은 사건들의 단순한 합이 아니다. 같은 시간을 살았어도 누군가는 그것을 상처로 간직하고, 누군가는 그것을 힘으로 품는다. 삶이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삶을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우리를 만든다. 정체성이란 과거라는 재료를 어떤 눈으로 바라보고, 어떤 손으로 다듬으며, 어떤 의지로 쌓아 올리느냐의 문제다.

기억은 과거를 보관하는 창고가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편집하는 살아있는 텍스트다.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기억하고, 자신을 설명하기 위해 기억을 배열하며, 행동의 근거를 세우기 위해 기억을 불러낸다. 기억은 정체성의 뼈대이자, 그 뼈대 위에 살을 붙이는 손이다.

선택하는 기억

기억은 선택한다. 우리는 살면서 무수한 순간을 마주하지만,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간직하지 않는다. 어떤 장면은 실제보다 더 크게 부풀려지고, 어떤 상처는 시간 속에서 희미해지며, 어떤 순간은 마치 유리병에 담듯 또렷하게 보존된다. 기억이란 사실의 나열이 아니라 의미의 선택이다. 우리는 의미 있다고 여긴 것만 기억하고, 기억한 것만 의미 있게 여긴다.

그렇기에 기억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 해석이다. 같은 과거를 살았어도 각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억은 있는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과거의 모습이다.

관리되는 기억

기억은 관리된다. 우리는 자신에게 이로운 기억을 더 자주 떠올리고, 그 기억에 새로운 의미를 덧칠한다. 때로는 나를 정당화하기 위해, 때로는 나를 성찰하기 위해 기억을 소환한다. 기억은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강물이 아니라, 실용성과 타당성이라는 기준으로 재편되는 정원이다.

우리는 기억을 돌본다. 어떤 기억은 물을 주어 키우고, 어떤 기억은 잡초처럼 뽑아낸다. 이 돌봄의 방식이 곧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한다. 기억을 어떻게 다루느냐는, 결국 나 자신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다.

미래를 짓는 기억

기억은 과거를 향하지만, 그 방향은 늘 미래를 가리킨다. 과거를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우리는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될지 스스로에게 암시한다. 과거에 대한 흡수, 정리, 재해석은 미래의 나를 예비하는 작업이다. 우리는 기억을 통해 과거를 살피지만, 실은 기억을 통해 미래를 설계한다.

기억은 단순히 지나간 시간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앞으로 살아갈 시간을 위한 초석이다. 나는 내가 기억하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내가 기억하는 방식으로 세계를 마주한다.

결국 우리는 기억을 통해 산다기보다, 기억을 통해 만들어진 존재로 살아간다. 기억은 우리를 구성하는 재료이자, 우리를 형성하는 건축가다. 우리는 매 순간 기억을 선택하고, 배열하고, 해석하며, 그렇게 우리 자신을 짓는다. 기억이라는 이름의 건축. 그것이 바로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것의 정체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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