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산티아고

by 이만희

불확실한 날들 속에서 내가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단 하나, 공원이었다.

나는 공원에 말을 걸었고, 공원의 나무들은 오래된 친구처럼 내 말을 들어주었다. 다니던 직장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들었을 때도, 나는 가장 먼저 공원으로 향했다.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파란 하늘 아래 기지개 켜는 나무들을 바라보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냥 멍하니.

그 경계의 시간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 안에는 울고 있던 작은 아이가 있었다. 나는 손을 내밀어 그 아이를 안아주었다. 그 아이는 고개를 들어 조용히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 그 말은 어느새 내게 돌아와, 나를 위로하는 목소리가 되었다.

집 안에서 하루 종일 머물다 보면 가족들과 사소한 일로도 마음이 금방 다친다.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되는 순간, 나는 속으로 조용히 외친다. 지금 나가야 한다. 말다툼을 시작하면 작은 불씨가 금방 번져 서로의 마음에 상처만 남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주말은 길고 불편해진다.

그래서 나는 공원으로 간다.

공원에 가면 마음이 걸어갈 길이 생긴다. 체력만 된다면 하루 종일 걸어도 좋다. 여기가 나만의 산티아고이고, 나만의 제주 올레길이다. 걷는 동안 모든 감각이 다시 세상으로 열린다. 삶의 주도권이 내게 돌아온다.

걷고 싶으면 걷고, 멈추고 싶으면 멈추고, 앉고 싶으면 앉을 수 있는 자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

내 삶은 결국 익숙한 공간들에서 다져진다. 익숙함은 때로 지루하고 지겹지만, 막상 떠나려고 하면 또 불안이 몰려온다. 그래서 나는 익숙한 공간이 주는 평안을 버리지 않는다.

공원은 그 익숙함 속에서 나를 지켜주는 작은 안식처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공원으로 간다. 바람이 나를 반겨주고, 나무들이 나를 기억해 주는 곳으로. 그곳에서 내 안의 작은 아이에게 다시 말을 건다.

괜찮아, 오늘도 여기까지 잘 왔어.

그리고 나는 또 천천히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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